[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하태길] 나일강과 람세스 2세, 흐름과 멈춤 사이

입력 2026-04-02 1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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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나일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석양
나일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석양

거대한 돌기둥처럼 서 있던 람세스(Ramesses) 2세 입상. 2025년 개관한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 중심으로 옮겨진 그는 여전히 완벽한 통치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를 올려다보았다. 감탄보다 먼저 질문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 거대해야 했을까? 무엇을 두려워했기에 이렇게 남겼을까? 수많은 돌 위에 새겨진 업적과 그의 이름은 언제나 승자의 언어이다. 나는 그 글자 밖에 있는 침묵 속 여백을 듣고 싶었다. 그 순간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가 떠올랐다. 평화로운 강 위에서 진실을 숨겨두었던 '나일강의 죽음(Death on the Nile)'이 인간의 욕망을 추적했던 것처럼 나도 나일강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돌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천천히 물어보기 위해서.

◆나일강, 그 오랜 흐름을 타고

나일강 크루즈는 생각보다 오래된 여행 방식이다.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이 이집트 고대 유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관광객을 위한 나일강 크루즈가 등장했다. 당시 유럽 지식인들에게도 이집트는 기원 이전에 존재한 더 오래된 세계였다. 고고학자와 외교관, 작가와 귀족들이 이 배를 타고 문명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호기심으로 사람들은 크루즈에 몸을 싣고 나일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석양을 바라본다. 수천 년 동안 이집트인들의 무한 신뢰를 받아온 나일강을 따라서.

◆브랜드로 각인된 람세스 2세를 찾아서

사막은 거대한 광고판 같았다. 그리고 그 위에 가장 크게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인물이 있었다. 바로 람세스 2세다. 평균 수명이 40세 안팎이던 시대에 그는 67년 동안 왕위에 올랐고, 건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증명했다. 아부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 카르낙 신전(Karnak Temple), 룩소르 신전(Luxor Temple)은 종교 시설이 아니라 '브랜드 터치 포인트'였다. 많은 석상은 조각품이 아니라 거대한 옥외광고(OOH, Out of Home Advertising)였다. 곳곳에 반복적으로 새겨진 람세스 2세는 오래 기억되는 자가 오래 통치한다는 믿음 아래 스스로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돌 대신 LED를, 파피루스 대신 SNS를 활용할 뿐이다. CI(Corporate Identity) 매뉴얼을 떠올려보자. 람세스 2세가 같은 서체, 같은 상징, 같은 위엄을 엄격히 사용했듯이 현대 기업은 색상을 통일하고, 로고 비율을 규정하며, 사용 방식을 관리하여 경쟁우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

100년 넘게 붉은색과 곡선 로고를 유지하는 코카콜라(Coca-Cola), 멀리서도 단번에 인식되는 맥도날드(McDonald's)의 황금 아치를 예로 들 수 있다. 브랜드는 기억의 전쟁이다. 시각적 반복은 신뢰를 만들고, 익숙함은 심리적 지배력으로 이어진다. 광고는 설득이 아니라 각인이 되는 것이다.

◆람세스 2세는 왜 네페르타리를 같은 높이로 세웠을까?

아부심벨에는 대신전과 소신전이 있다. 대신전 입구에 앉아있는 거대한 석상 4개는 모두 람세스 2세다. 시선을 압도하는 석상 무릎 아래에는 왕비와 자녀들의 조각상이 작은 크기로 놓여 있다. 권력의 서열이 한눈에 보이는 높이였다. 그러나 바로 옆 소신전에서 이 규칙이 깨졌다. 왕비 네페르타리(Nefertari) 석상이 람세스 2세와 거의 같은 크기로 서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권력은 거대함으로 말하지만 그 거대함도 사랑 앞에서는 달라지는 예외를 보여준다.

수단에서 내려오던 나일강은 아스완 하이댐을 만났다.
수단에서 내려오던 나일강은 아스완 하이댐을 만났다.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을 만들어준 람세스 2세

이집트 아스완(Aswan)에서 나일강은 멈추었다. 수단(Sudan)에서 내려오던 나일강은 아스완 하이댐(Aswan High Dam)을 만나 거대한 나세르호(Lake Nasser)를 만들었다. 이 호수는 국경을 넘어 남쪽 아부심벨까지, 200킬로미터 넘게 이어진다. 20세기, 이집트가 세계 최대 규모의 하이댐, 수력발전과 수자원이라는 현실을 선택했을 때, 유네스코는 "아부심벨의 수몰은 이집트만의 손실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손실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아부심벨 신전은 1,000여 개로 분해되어 원래 자리보다 65미터 위로 옮겨진 곳에서 다시 조립되었다. 1년에 두 번, 태양이 신전 깊숙이 들어와 람세스 2세의 얼굴을 비추는 장면 역시 그대로 재현되었다. 과거는 이렇게 유네스코에 의해 처음으로 구조되었다. 197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이 탄생했고 유산은 더 이상 한 나라의 과거가 아니라 인류가 함께 책임지는 현재가 되었다.

카르낙 신전 대열주실 기둥에 남겨진 카데시 전투
카르낙 신전 대열주실 기둥에 남겨진 카데시 전투

◆낙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

람세스 2세의 이름과 얼굴이 반복되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 건축 단지 카르낙 신전이다. 대열주실 벽과 기둥에는 카데시 전투(Battle of Kadesh) 장면이 새겨졌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Hittites)와의 전투에서 수천 명의 적을 물리친 영웅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는 무승부에 가까웠지만, 신전의 벽은 패배를 기록하지 않는다. 부조는 기록이자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어가 아닌 글자와 숫자로 새겨진 낙서를 여러 차례 발견했다. 처음에는 문화재를 훼손한 것으로 보여 얼굴이 찌푸려졌다. 수천년을 버텨온 돌 위에 함부로 새겨진 자국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보존과 훼손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낙서 또한 잠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기록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굴된 채 남겨진 유적지가 또 다른 시간의 층이 되는 것처럼 의도하지 않은 흔적이 의미를 갖는 순간은 마케팅에도 찾아볼 수 있다.

람세스 2세의 다리에 새겨진 낙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
람세스 2세의 다리에 새겨진 낙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

대표적인 사례가 포스트잇이다. 3M의 연구원이 강력 접착제를 만들려다 '너무 약하게 붙는' 접착제를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실패로 보였던 결과였지만 쉽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차별화된 사용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 강점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포스트잇은 아이디어를 붙이고 이동시키는 손쉬운 도구가 되어 업무 문화의 대변혁을 가져왔다. 브랜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처음의 의도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해석의 방향일 수도 있다.

멤논의 거상이 된 아멘호테프 3세
멤논의 거상이 된 아멘호테프 3세

◆죽음의 방향, 왕가의 계곡

나일강 서쪽은 고대 이집트에서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향이다. 약 34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번성기를 통치했던 아멘호테프(Amenhotep) 3세가 멤논(Memnon)의 거상이 되어 룩소르 남쪽 왕가의 계곡으로 향하는 나를 환영해주었다. 피라미드는 사라지고 왕들은 산맥 사이 골짜기에 숨어 들었다. 왕가의 계곡을 조성하면서 도굴을 막기 위해 수직 갱도를 만드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투탕카멘(Tutankhamun) 무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무덤이 도굴당하고 말았다.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작은 무덤이기도 한 투탕카멘의 무덤으로 먼저 찾아갔다. 화려한 외형을 기대했으나 놀랍게도 아주 작은 푯말 하나가 위치를 알려줄 뿐이었다. 짧은 통로와 작은 방은 투탕카멘의 갑작스런 죽음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시간이 이어진 길이였다.

투탕카멘은 미라(mummy)가 되어 검게 누워있었다. 죽은 자가 저승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한다는 사자의 서가 보였다. 태양신 라의 배, 심장의 무게를 재는 장면과 반복되는 상형 문자들. 영혼이 통과해야 할 절차대로 오랜 시간을 견딘 주문들이 울리고 있었다. 존재감 없는 소년 왕 투탕카멘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되었다. 사람들은 람세스 2세의 기록된 업적보다 오히려 기적에 가까운 스토리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죽음의 방향, 왕가의 계곡
죽음의 방향, 왕가의 계곡

◆여백의 미, 참여형 마케팅으로

테슬라(Tesla)는 신차 발표 때 세부 기술 설명보다 미래 비전과 티저 영상(Teaser Advertising)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택했다. 특히 2026년 테슬라 사이버트럭 공개 당시, 파격적인 외형만으로 논쟁과 추측을 폭발적으로 확산시켰다. 모든 답을 주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이 생성되었고, 그 질문이 곧 관심과 화제가 되었다. 설명은 이해를 돕지만, 여백은 참여를 이끌어냈다. 암시적 메시지 전략(Implicit Messaging)이라고 할 수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이 남겨둔 수수께끼처럼, 브랜드 역시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검은 미라가 된 투탕카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
검은 미라가 된 투탕카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

◆자동차 엠블럼이 된 독수리

그 작은 무덤에서 나온 뒤에야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세티(Seti) 1세의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얀 벽면에 새겨진 그림 문자들을 보면서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밤이 깊어졌다. 밤하늘을 형상화한 청색 천장 아래 여신 이시스(Isis)는 독수리가 되어 푸른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왕의 영혼을 보호하던 그 날개가 수천 년을 건너 자동차 엠블럼(Emblem) 속에서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영국 자동차 밴틀리(Bentley)와 현대 자동차 제네시스(Genesis)의 엠블럼이 되어 도로 위에서 다시 펼쳐지고 있다. 벤틀리의 날개 달린 B 엠블럼은 속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포지셔닝(Positioning)된 선택받은 자의 품격을 상징한다. 제네시스 역시 날개를 펼친 엠블럼을 사용한다. 안정감을 주는 방패와 좌우 날개의 도약으로 시각화하여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에 성공했다.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프리미엄 브랜드 로고는 세티 1세의 천장에서 시작된 독수리 날개였다.

세티1세의 무덤속 독수리 여신 이시스의 푸른 빛
세티1세의 무덤속 독수리 여신 이시스의 푸른 빛

규모가 크고 화려한 세티 1세의 무덤을 보고 나니 투탕카멘 무덤이 턱없이 작다는 것이 피부로 다가왔다. 투탕카멘의 그 작은 무덤에서 5000여점의 화려한 부장품이 나왔다고 하니, 이곳 세티 1세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았더라면 그 규모는 엄청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무덤의 크기나 장식이 기억의 깊이를 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큰 무덤은 준비된 죽음을 말하고 작은 무덤은 남겨진 시간을 말해주었다. 세티 1세의 깊은 밤을 지나 나는 비로소 투탕카멘의 짧은 밤을 이해했다.

◆계획이라는 말이 무색한 우연과 영원

AI라는 현대적 헤브라이즘(Hebraism)이 일상 깊숙이 스며든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수천 년 전의 석상 앞에 멈춰서서 한참을 올려다본다. 람세스 2세는 거대한 신전과 석상에 이름을 새기며 영원을 계획했고 투탕카멘은 뜻밖의 발견으로 시간을 건너와 우연히 영원이 되었다. 결국 영원은 의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케팅이 상품을 파는 기술이 아니라 기억을 설계하는 기술이라면, 고대의 왕들 또한 시간을 상대로 한 거대한 브랜드 전략을 실행한 셈이다. 그러나 그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묻는 순간, 우리는 잠시 멈추게 된다. 멈춤은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남겨질 만한 것인가?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