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김종민] 형사사법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입력 2026-07-22 07: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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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MK 파트너스)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MK 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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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수사권 논쟁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은 5공 시절 보다 더 많은 권력을 경찰에 몰아주려는 정권의 의지다. 소위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더불어민주당 정권이라 더욱 그렇다. 무소불위의 검찰을 견제한다는 명분이지만 경찰 또한 전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강력한 국가경찰이다. 경찰청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행안부장관은 경찰청장에 대하여 구체적 사건은 물론 치안정책에 관한 일반적 지휘권도 행사하지 못한다. 인사와 예산, 법령 제개정 권한도 모두 경찰청장의 권한이다. 경찰청 정보국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정보조직을 갖고 있는 경찰은 국정원의 국내정보 폐지 이후 통제받지 않는, 수사와 정보가 결합된 거대 권력기관으로 변모했다. 과거와 달리 경찰은 더 이상 견제와 균형을 말하지 않는다.

장윤기 사건은 경찰수사에 아무런 통제장치가 없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었다. 1987년 민주화의 기폭제가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와 부천서 성고문 사건도 본질은 동일하다. 당시 5공 경찰은 박종철의 사체를 화장해 고문치사를 은폐하려 필사적이었고, 성고문 사건에서도 '운동권 학생이 성을 도구화 하여 공안기관을 무력화 시키려는 작전'이라고 전 경찰력을 동원해 홍보했다. 검사의 수사지휘가 존재했던 5공 시절에도 그랬는데 수사지휘권에 이어 검사의 보완수사권 마저 없어지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수사는 사법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는 근대 형사사법의 대원칙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전건송치 없는 보완수사권은 무의미하다. 경찰은 내부통제장치 강화를 말하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울 강남경찰서의 경우 형사과와 수사과 소속 수사관이 수십명이 넘는다. 과장이 과 소속 수사관들이 어떤 사건을 수사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수사기록을 철저히 검토해 혐의유무와 법리적용의 적절성을 지휘하고 판단할 수 없다. 그런 경찰의 송치사건을 검찰이 전건 송치받아 형사부 검사들이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사한 뒤 부장검사, 차장검사, 검사장이 결재해 사건의 결론을 내려왔던 것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해 왔던 지난 78년간의 우리 형사사법시스템이었다.

검찰 수사권이 완전 폐지되고 공소청으로 바뀌게 되면 지금까지의 검사 중심의 형사사법이 경찰서 수사팀장 중심의 형사사법으로 변모된다. 검사와 부장검사, 차장검사, 검사장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결재시스템은 완전 실종된다. 법률전문가도 아니고 수사의 전문성도 떨어지는 경찰 중심의 형사사법을 국민들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장윤기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무엇을 말하는가. 권력의 집중되는 곳에 부패는 번성한다. 지난 6월 법원은 피의자로부터 사건을 무마해 주겠다며 22차례에 걸쳐 2억1120만원의 뇌물을 받은 전 의정부경찰서 수사팀장에게 징역6년을 선고했다. 전건송치를 하지 않고 검사의 보완수사권 마저 폐지될 때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범죄피해자 보호에 치명적 결함이 생기는 것도 문제지만 피해자가 없는 부패나 마약사건의 경우 사회적 피해는 심각하다.

사법위민(司法爲民). 사법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국가소추주의는 사적보복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국가가 범죄피해자를 대신해 형벌권을 행사함으로써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형사사법제도가 부실해 범죄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범죄자 천국을 만든다면 존재이유를 상실한 국가소추주의는 폐지하고 사적 보복을 허용해야 하지 않는가. 지금의 보완수사권 논쟁은 '형사사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 경찰을 위한 형사사법, 정권을 위한 형사사법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이어야 한다. 정치는 결과로 책임지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시절 서울중앙지검 4차장까지 신설해 검찰을 동원한 적폐청산에 집중했던 민주당과 검찰을 해체해야 한다는 이재명 정권의 민주당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혼란스럽다. 민주주의의 사악함은 다수의 승리가 아니라 저질스러운 것의 승리라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