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모현철] TK 시도민의 '지방소멸 시대 생존법'

입력 2026-09-13 18:12:11 수정 2026-09-13 18:13:06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대구 수성구청역~만촌네거리에 이르는 달구벌대로 1㎞ 구간에는 십수 년째 매일 밤 10시를 전후해 눈물겨운 주정차 전쟁이 벌어진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학원가 일대에서 학원 수업을 마친 자녀를 태우기 위한 학부모들의 '픽업 차량'과 학원 셔틀버스로 도로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대형 학원·개인 교습소 200여 곳이 밀집해 있어 학생 픽업을 위한 불법 주정차 문제가 되풀이 되고 있어서다. 주차금지구역임에도 깜빡이를 켠 차들이 불법 주정차를 일삼고, 이중·삼중 주차로 도로 통행이 마비되기도 한다. 대구시 자치경찰위원회는 이곳의 야간 교통혼잡과 교통안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한시적 주차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금쪽같은 자녀를 편하게 태워주고 싶은 부모의 정성은 애틋하지만 이곳을 지나는 운전자들의 스트레스도 줄여 줘야 하지 않을까.

대구 수성구의 학구열은 '제2의 강남'으로 불릴 정도로 뜨겁다. 밤마다 자녀들을 픽업하는 부모들의 희망은 자녀의 '인서울 대학' 진학일 가능성이 크다. 서울에는 명문대와 일자리가 많지만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19일 치러지는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졸업생과 검정고시생 등 'N수생'이 20만 명에 육박하며 23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대구경북에서도 전체 수능 지원자는 지난해보다 줄었지만 졸업생 지원자는 10% 이상 증가했다. 학교를 떠난 뒤 더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시험장에 앉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의대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대구 4개 의대 중도탈락자는 44명으로 3년 전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수도권 등 선호도가 높은 의대로 다시 진학하려는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대구경북(TK)이 처한 현실을 보면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재앙은 번번이 겹쳐 온다는 뜻이다. 중요 현안을 둘러싼 'TK 패싱'이 누적되고 있다. 호남권 반도체 800조원 투자에 이어 '서울대 10개 만들기' 경북대 탈락, TK신공항 건설 사업 방치가 대표적이다. 전국 지자체 중에서 TK가 왕따를 당하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2차 공공기관 이전, 지역 국립의대 신설, 대구경북 행정통합 등 대구경북의 미래를 좌우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대법원 대구 이전론도 다시 불붙고 있지만 희망 고문이 될 수 있어 걱정이 앞선다. TK 홀대에 대해 정부는 차별 없이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해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약속만 믿고 있기에는 '지방소멸 시계'의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을 견제해야 할 지역 국회의원들은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지역민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보수정당에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침체된 지역 경제라는 허탈감이다.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지고, 지역 정치권이 무능할수록 밤마다 자식들을 학원에서 픽업하는 부모들의 주정차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TK 시도민들은 정부와 지역 정치권을 믿는 대신 자녀들을 '서울 공화국'에 입성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설, 추석 등 명절이나 선거철이 되면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정부와 지역 정치권을 믿지 못하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선택한 TK 시도민의 '지방소멸 시대 생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