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최봉태 변호사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 정부가 나서야"

입력 2026-03-25 14:24:16 수정 2026-03-25 16: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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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최봉태 대표, 심상균 사무국장 인터뷰

심상균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최봉태(왼쪽) 대표와 심상균 사무국장이 법무법인 삼일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마치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일제강점기인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장생) 해저탄광'에서 수몰사고가 발생했다. 갱도 천장이 바닷물의 무게와 수압을 견디지 못하면서 무너진 사고였다. 이 사고로 조선인 노동자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183명이 물속에 그대로 묻혔다. 이들 중 대구·경북 출신은 모두 73명으로 조선인 희생자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많았다.

84년이 지난 올해 1월 13일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날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해 수습된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유골에 대한 DNA 감정에 협력한다는데 합의했다. 그동안 과거사 논의에서 배제돼 왔던 조세이 탄광 문제가 처음으로 양국의 공식 의제에 올라 의미 있는 성과를 낸 것이다. 이 사건을 국내에 알린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이하 귀향추진단)의 노력이 컸다.

이 단체는 28일 대구 남구 관오사에서 '일본 장생탄광 수몰자 183위 합동 천도재 및 고(故) 대만 잠수사 빅터 49재' 행사를 연다. 다음달 17일엔 창립대회를 열어 귀향추진단을 공식화하고 보다 적극적인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 20일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대표인 최봉태 변호사와 심상균 사무국장을 만나 그간의 활동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조세이 탄광은 어떤 곳인가.

▶(심상균) 조세이 탄광은 유독 조선인이 많아 '조센(조선) 탄광'이라고 불렸다. 이유가 있었다. 갱도가 지나는 지층 두께가 법이 정한 47m보다 얕은 30여 m밖에 되지 않아 붕괴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불법적인 채굴 환경에서 조선 청년들은 살인적인 노동, 감시, 감금 등 참혹한 환경과 싸웠다. 결국 1942년 2월 3일 갱도가 무너지는 수몰 사고가 터졌다. 탄광 회사는 2차 피해를 막겠다며 널빤지로 갱도 입구를 막아버렸고 작업자들은 산 채로 수장됐다. 진실은 그렇게 80년 넘게 은폐됐다.

심상균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사무국장이 조세이 탄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은 어떻게 꾸려지게 됐나.

▶(심상균) 최 변호사께서 조세이 탄광 문제에 관심을 갖고 유해 발굴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인들이 자연스레 하나 둘 합류하게 됐고, 그렇게 단체가 만들어지게 됐다. 처음엔 최 변호사님이 포함된 조찬모임 회원을 중심으로 꾸려진 20여명이 2024년 7월 조세이 탄광 부지를 처음 방문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같은 해 10월 2차 방문을 했고, 지난해 2월 83주기 추모제때 100명에 가까운 많은 이들이 3차 방문을 다녀온 이후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해 본격적인 활동을 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단체가 꾸려지게 됐다.

그동안은 방문단을 꾸려서 현장에 가는 행사를 주로 해 왔다. 지난달까지 총 6차례 현지를 방문했는데 방문단으로 참여한 이들은 300명쯤 된다. 이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은 230명 정도다.

사실 저희 단체가 활동하기 이전에도 조세이 탄광 관련 보도나 자료는 있었지만, 모르긴 해도 방문단으로 참여한 이들의 90% 이상은 최 변호사님을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됐을 거다. 다들 방문단으로 다녀와서는 이제 내 일처럼 좀 더 가까이 느끼게 되고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저 또한 그렇다.

-최 대표께서는 조세이 탄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최봉태) 노동법에 대해 좀 더 공부하기 위해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 도쿄대에서 유학을 하면서 일제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일본에선 일제에 동원된 전쟁피해자들이 소송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때였다. 그들의 소송을 지켜보며 일제 전쟁 피해는 반드시 풀고가야 할 역사적 과제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이후 위안부 할머니 등 다수의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을 대리했다.

이런 활동이 계기가 돼 2005년 국무총리실 산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초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조세이 탄광은 당시 조사 대상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 1990년대부터 조세이 탄광 문제를 알리고, 현재 성금을 모아 유해 발굴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회'(이하 새기는 회)를 알게 됐다.

이들의 활동을 지켜보며 유해발굴과 수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등에 함께했다. 2024년 1월엔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조세이 탄광 희생자 사진전을 주선했다. 우리 조상을 찾는 일인데 뭐라도 도와야지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장생탄광 희생자 귀향추진단' 대표를 맡고 있는 최봉태 변호사가 귀향추진단의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유해 발굴 작업은 '새기는 회'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수습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됐나.

▶(최봉태)2024년 2월 '새기는 회'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모금한 돈으로 유해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그해 9월 파괴된 잔해와 쓰레기에 파묻혀 있던 갱도 입구를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차례 잠수조사를 진행해왔다. 일본인 잠수사 이사지 요시타카를 중심으로 오랜 수중 탐험 경력과 특수 잠수 기술을 가진 다국적 잠수사들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바닷속에 잠겨 있는 유골 수습 작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4월엔 처음으로 한국인 잠수사가 유골 수습 작업에 참여했다.

붕괴 위험이 있는데다 시야 확보가 어려운 탓에 유골 수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해 8월 한국인 잠수사 2명의 손에 의해 처음으로 4점의 유골이 수습됐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초 6명의 잠수사가 참여한 추가 수색 작업에서도 두개골 등 몇몇 유골을 확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만 국적 잠수사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죄송스럽다. 국적도 다른 우리 조상들 유골을 수습해 주러 오셨다가 변을 당하신 것 아닌가. 이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희생자들의 유골이 고국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국민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지난 1월 한일 양국 정상이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유골에 대한 DNA 감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유해 발굴 작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최봉태) 양국 정상이 어떤 약속을 했는지 꼼꼼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날 합의는 수습된 유골에 대한 DNA 감정에 대해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간인들이 목숨 걸고 유골을 수습해 오면 DNA를 감정해 유족을 찾고 보관하는 정도의 협력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보자면 양국 정부가 굉장히 무책임한 것 아닌가.

일본 정부는 전쟁을 위한 필요에 의해 강제 동원을 한 것이고, 우리 정부는 나라를 빼았겼었기에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이런 책임 의식에 공감한다면 양국은 정부 차원에서 희생자 유골을 수습하겠다고 해야 마땅하다. 유족들에게 희망고문으로 남지 않도록 이제라도 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귀향추진단의 향후 계획은.

▶(최봉태) 지금까진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조세이 탄광 이야기를 국민들에게 알리는데 무게를 뒀다면, 이젠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촉구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희생자 유골을 수습한지 6개월이 지났고, 양국 정상이 DNA 감정에 협력하겠다고 한지도 2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DNA 감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게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일인가.

게다가 우리 정부는 희생자 유족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유족 측 DNA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희생자 DNA 감정은 무용지물이다. 지금부터라도 조세이 탄광 희생자 명부를 기초로 유족을 찾고, 유족 측 유전자 기록을 확보하는 일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런 부분들을 촉구하고 돕는 게 귀향추진단이 앞으로 해결해야할 일이 아닐까 한다.

지난 2월 유해 발굴 과정에서 숨진 대만 잠수사 유족을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