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오면 하루가 바로 시작된다. 아침 공기가 아직 집 안에 남아 있는 시간, 나는 자연스럽게 악기를 꺼내 든다. 독주회가 가까워질수록 연습은 더 밀도 있게 이어지고, 한 음을 오래 붙잡은 채 원하는 표현이 나올 때까지 같은 프레이즈를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톨스토이에 관한 해설도 함께 준비하고 있어서, 음악과 문장을 오가다 보면 생각이 이어졌다가 끊기고, 다시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그렇게 연습에 몰입해 있는 동안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돼있다.
현관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조금 전까지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렇게 하루는 자연스럽게 가족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놀이터에서 아이와 그네를 타고, 밀어주고, 다시 밀어주고, 또 밀어주면서 시간을 보낸다. 시소 위에서는 함께 장난을 치며 웃고,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그 자리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고 있는 나 자신이 분명히 있으니까.
그런데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연주할 곡들이 계속 맴돌고, 어디에서 숨을 더 길게 가져가야 할지, 어느 부분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지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조금 전까지 붙잡고 있던 톨스토이의 문장도 다시 떠오르고, 그 사이로 마감이 코앞까지 다가온 칼럼이 스쳐 지나간다.
가끔은 하루에 여섯 시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연습하는 시간도 어느 하나 줄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늘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을 내려놓아야 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어쩌면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야 할 장면들이 많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연습과 육아는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잘 해내고 싶었지만, 그건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덜 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대신 그 순간에 있는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두 개의 삶을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감사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삶은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여러 시간을 동시에 살아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면 아이를 재우다 나도 함께 잠들게 되고, 깨어 있으려 애써보지만 결국 몸이 먼저 멈추게 된다. 머릿속에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지만, 하루의 에너지는 이미 다 써버린 뒤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이 둘, 셋을 키우는 부모들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크기는 어쩌면 한 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그네를 밀어주면서도 음악을 생각하고, 음악을 하면서도 아이를 떠올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나는 오늘도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간 사이를 건너며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