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가족사를 다루는 서사 중 대체로 가부장적 폭력성을 다루는 스토리가 많고, 출생의 비밀 정도를 섞으면 플롯은 적절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 정도의 서사라면 무대 타격감이 없고 식상할 법도 한데, 극단 적의 올해의 창작산실 신작 <내가 살던 그 집엔>(작 마정화, 연출 이곤)은 이 두 가지를 묶고 한국 사회에 정착한 디아스포라(diaspora)로서 화교가족사라는 소재를 덧붙인다. 한국 사회의 화교 문화는 임오군란 이후 제물포항이 개항(1883)되면서 형성되었으니 140년의 정착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가 살던 그 집엔>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1970년대 한 화교 가족사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의 가족 서사는 넓게 보면 한국 사회 안에서 살아온 화교 디아스포라의 삶과 그 시대의 기억도 겹쳐진다. 1970년대 가족사의 공통점이라면 산업화 시대의 노동, 남성 폭력, 바람둥이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화교 디아스포라와 1970년대 가족사 '가부장적 폭력과 출생의 비밀'
'내가 살던 그 집'의 가족 관계 형성도 상당히 꼬여 있다. 화자(話者)로 등장하는 '나'(곽지숙 분), 택시를 운전하던 생물학적 '엄마' (정다함 분), 그리고 '나'를 길러준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마마(타오타오)다. '나'는 토종 한국인의 핏줄이지만 마마 때문에 화교 이름(타오)을 갖게 되는 출생의 비밀이 섞여 있다. 작품을 마지막까지 보게 하는 힘은 화자(딸)의 가족사에 숨겨진 비밀을 역순으로 밝혀가는 구조에 있다. 마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처럼 '마마'의 화교 가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나'의 가족사에 얽힌 비밀을 하나씩 풀어가는 서사적 장치를 취한다. 길러준 마마, 생물학적 엄마인 여성 택시 운전사의 공통점은 가부장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살던 그집엔>도 시대의 폭력으로부터 비켜갈 수 없는 두 여성의 이야기와 이주여성 꾸엔을 교차하며,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시대적 폭력성의 구조를 보여준다. 남편도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억눌린 삶을 살아왔고, 그 분노가 가정 안의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극 중 인물 '마마'는 여성 택시 운전자('나'의 엄마)를 만나면서 인생에 위안을 얻게 되고, 한국 사회에서 끝내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화교 여성의 삶이 남성 폭력이라는 서사와 겹쳐진다. 마지막 지점에서는 '나'의 출생에 얽힌 비밀이 밝혀지는데, '엄마'는 마마의 반지를 둘러싼 폭력 사건으로 인해 남편을 충동적으로 죽이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마마'는 이주여성 꾸엔이 살아가고 있는 <내가 살던 그 집엔> 뒷마당에서 남편 살인의 비밀을 안은 채 사라진 인물로 설정되면서 이곤 연출도 1970년대 남성 폭력과 여성, 그리고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없었던 화교 가족의 삶을 형상화하는 데 집중한다.
프롤로그부터 무대 배경과 장면의 분위기를 그 시절 고고텍을 연상하게 하는 장치로 시대를 구성한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흐르고 복고풍 의상과 나팔바지가 등장하면서 시간을 1970년대로 돌려놓는다. 이 분위기는 두 여성의 삶을 '거짓말'처럼 들리는 기억의 장면으로 시대화하는 장치로 삽입된다. 그래픽 이미지로 배경을 만들고 극 후반에는 마마의 아버지를 소환해 중국풍 이미지로 전환하며 마마의 그리움을 환기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나와 마마, 그리고 엄마의 시간을 밝혀가는 방식도 흥미롭다. 극 초반에는 '나'가 마마의 시간(과거)을 거리를 두며 대신 따라가고, 비밀이 밝혀지는 극 중후반부터는 마마와 엄마가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말하고 '나'는 바라보는 구조로 전환된다. 마지막 장면은 꾸엔을 통해 <내가 살던 그 집엔>에서 사라진 마마의 비밀이 밝혀지는 정도다.
배우들의 동선과 움직임으로 시간을 교차시키고 마마와 '나'를 동일화된 구조로 배치하며 때로는 화자의 시선으로 그 시간을 바라보게 하는 장면 구성은 매끄럽고 배우들도 1970년대를 녹여낼 정도로 충분하다. 그러나 화교라는 정체성이 구조적인 차별이나 역사적 맥락으로 깊게 확장되기보다는 가족사의 비극과 출생의 비밀, 남성 폭력의 서사에 머무는 한계를 보인다. 결국 <내가 살던 그집엔>은 화교라는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정체성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채 남성 폭력과 가족 비극의 서사 안에서 끝난다. 화교라는 소재가 무대의 중심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내가 살던 그 집'이라는 1970년대 가족사의 폐쇄된 방 안에 머문 느낌이다. 이 작품의 장점은 숨겨진 비밀을 밝혀가는 서사 구조와, 이곤 연출이 1970년대 복고적 분위기로 무대를 형상화하며 이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서사를 풀어가는 구조에 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