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대한광복회 시초지…대구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공간
사라진 대구형무소 기록만 존재
'264' 등 팔도 225명 독립운동가…고초·순국 사연 건물과 함께 잊혀
역사관, 옛터 삼덕교회 자리 조성…사형장·옥사 등 시설 재현도 기대
대구에서 독립기념관 분원 유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독립기념관에 분원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독립기념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다. 대구시는 법안 통과 여부가 향후 독립기념관 분원 설치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은 지난 16일 독립기념관 분원 유치를 위한 보고회를 열고 추진 상황을 점검했다.
시민사회의 열의도 뜨겁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와 광복회 대구시지부는 6년 전부터 대구독립운동기념관 설립을 추진해왔다. 이들 두 단체는 앞서 지난달 23일 대구 항일독립운동체험학습관에서 '대구독립운동기념관,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고 분원 유치에 대한 뜻을 모았다.
대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위상을 지닌다. 1907년 일본의 경제침탈에 맞서 국권회복을 위한 국채보상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번졌고, 대표적인 무장항일운동 단체인 대한광복회도 1915년 대구에서 결성됐다. 국내 유일의 독립운동가 전용 국립묘지인 '국립신암선열공원'도 대구에 있다.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금은 사라진 대구형무소 또한 대구의 독립운동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이곳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는 서울 서대문형무소(195명)보다 많은 225명에 이른다.
정인열 광복회 대구시지부 사무국장(전 매일신문 논설위원)은 그동안 연구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대구형무소 역사에 주목했다. 그의 5년여 연구 성과는 지난해 2월 대구형무소역사관 개관의 단초가 됐다.
지난 12일 대구형무소역사관에서 만난 정 사무국장은 "대구형무소는 탄압받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흔적을 되새기는 데 반드시 필요한 역사 시설"이라며 "기념관 분원 건립과 함께 대구형무소 복원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그동안 대구형무소는 독립운동사 속에서 명칭 정도만 단편적으로 언급되는 정도였을 뿐 제대로 연구되고 조명되지 않았다. 대구형무소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
▶2016년 말 광복회 대구시지부의 '대구독립운동사' 집필을 의뢰받은 게 출발점이 됐다. 처음엔 6개월 정도면 끝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해보니 다뤄야 할 부분이 무척 방대했다. 결국 1년 6개월이 걸려 완성했다. 대구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인물과 사건이 이토록 많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거다. 책을 쓰는 틈틈이 훗날 추가로 다뤄볼 목록을 적은 게 있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100가지 정도가 되더라.
대구독립운동사를 쓴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현재 광복회 대구지부장인 우대현 선생이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는 대한광복회 지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우재룡 선생의 장남으로, 대구독립운동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발기인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우대현 선생이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오는데 내놓을 게 없다"고 하소연하며 제안한 게 일제강점기 대구형무소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는 거였다. 행사 5개월 전인 2020년 2월의 일이다.
선생의 선친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당하고 돌아가신 곳이 대구형무소인데 그동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연구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하소연을 들으며, 대구형무소 역사를 정리한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이 '묻힌 순국의 터, 대구형무소'다. 이를 시작으로 이듬해인 2021년엔 개정판이, 2024년엔 개정증보판이 나오게 됐다.
-이 책을 통해 대구형무소가 대중에게 조금씩 알려지게 됐다. 그동안 대구형무소가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뭔가.
▶가장 큰 이유는 건물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서울 서대문형무소는 건물이 남아있다. 광복 이후 서대문 형무소는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뀌었지만 1980년대까지 사용됐고,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뒤에도 건물은 남겨졌다. 없애지 말고 남겨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이후 건축물 일부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다.
반면, 중구 삼덕동에 있던 대구형무소는 1961년 대구교도소로 이름을 바꿔 계속 사용되다가 1971년 당시 달성군 화원읍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불과 10여년 차이였지만 1970년대는 개발에 집중하던 시대였고 사람들의 생각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거다. 일제강점기 대구형무소는 서대문형무소·평양형무소와 함께 '3대 형무소'로 꼽혔다. 평양형무소는 북한에 있으니 당연히 잊혔고, 대구형무소 또한 건물이 사라지다보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됐다. 반면 서대문형무소는 역사적 인물 상당수가 서울에서 활동했기에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건물이 남게 되면서 연구 대상이 된 거다. 이후 정부 예산을 받는 역사관으로 재탄생하게 되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게 됐다.
-대구형무소는 그동안 대중들의 관심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에게도 주목받지 못했기에 대구형무소 역사를 정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선행 연구가 없다보니 찾아볼 수 있는 자료는 거의 다 찾아본 것 같다. 이를테면 조선총독부 관보엔 사형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관보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대구형무소 관련 내용을 끄집어내는 식이다.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공훈록도 일일이 살폈다. 그밖에도 개인문집과 자료집, 언론보도 등을 참고해 교차 검증하며 새로운 사실을 하나씩 모았다.
2020년 처음 책을 낼 땐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180명밖에 발굴하지 못했다. 이듬해 개정판을 낼 땐 206명으로 늘어났다. 2024년 개정증보판을 낼 때는 216명이었고, 지난해 9명을 추가로 발굴해 현재 225명으로 늘었다.
-대구형무소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대구형무소를 거쳐 갔다. 항일투쟁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도 적지 않다. 저항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는 대구형무소에서 받은 수인번호 '264'를 따서 필명으로 삼았다.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의사는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그밖에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심산 김창숙 선생, 전수용(전해산) 의병장, 안규홍 의병장 등도 대구형무소를 거쳐 갔다. 이곳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는 서울 서대문형무소보다 많다. 대구형무소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무덤 같은 곳이었고, 숱한 독립운동가의 운명이 대구에서 갈렸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대구형무소는 한강 이남에는 유일한 복심법원(현재의 고등법원)이었다.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 충청도와 강원도 일부, 나아가 제주도의 독립운동가들까지 대구형무소에 갇혔다. 이런 수많은 순국 사연이 형무소 건물과 함께 잊혔던 거다.
-대구형무소 복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대구형무소 복원이나 대구형무소 역사관 확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2월 대구형무소 사형장 자리에 대구형무소 역사관이 개관했다. 옛 대구형무소에 깃든 독립운동 애국지사들의 수난 역사를 잊지 않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겠다는 중구청의 노력이 무척 반가웠다. 수많은 순국자가 옥고를 치른 역사적 현장이라는 점에서 역사관 조성의 의미는 작지 않다. 다만 상징성에 비해 볼거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구형무소는 서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적 감옥 건축물이다. 국가기록원에 120여 장에 이르는 형무소 배치도와 상세 도면이 보존돼 있다. 게다가 이곳에서 고초를 당했던 전국의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기록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런 것들은 대구만의 특징적인 역사적 자산이다. 대구형무소 복원에 대한 당위성은 충분하다는 말이다.
대구형무소는 탄압받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흔적을 되새기는 데 반드시 필요한 역사 시설이다.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은 못 하겠지만 사형장과 옥사 등 일부 시설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역사 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한다면 교육적 효과와 상징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독립기념관 분원 유치와 함께 대구형무소 복원에 대해, 대구시에서도 보다 큰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