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6㎞ 좁은 바닷길 하나가 한국 물가·성장률 흔드는 이유

입력 2026-03-04 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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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원유 30% 통과하는 호르무즈…현대사 첫 봉쇄의 파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으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4일 인천 연수구 송도 한국가스공사 인천생산기지 터미널에 LNG 수송선이 정박해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으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4일 인천 연수구 송도 한국가스공사 인천생산기지 터미널에 LNG 수송선이 정박해 있다. 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단어가 쏟아지고 있다. 유가가 폭등하고,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치솟는 이유로 이 해협이 지목된다. 그런데 정작 호르무즈 해협이 어디에 있고, 왜 이렇게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기사는 많지 않다. 이 좁은 바닷길 하나가 한국 경제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숫자와 함께 들여다봤다.

◇ 폭 33㎞, 유조선 통과 구역은 겨우 6㎞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좁은 수로다. 북쪽은 이란, 남쪽은 오만 사이를 지난다. 전체 폭은 약 33㎞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수심이 깊어 유조선이 실제로 통과할 수 있는 구역은 6㎞ 안팎이다. 문제는 이 6㎞ 수역이 모두 이란 영해에 속한다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이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들이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외부로 내보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출구다.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20~30%가 이 해협을 통과하고, LNG는 전 세계 물동량의 3분의 1이 이곳을 지난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과 충돌할 때마다 이 해협 봉쇄를 위협 카드로 써왔지만, 이번처럼 실제 봉쇄를 단행한 것은 현대사에서 처음이다. JP모건도 "호르무즈 해협 항행이 거의 완전히 중단된 사태는 현대사에서 처음"이라고 밝혔다.

◇ 한국이 특히 취약한 이유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7%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이 가운데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LNG 역시 중동 의존도가 20.4%에 달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는 순간, 한국으로 들어오는 원유의 절대다수가 발이 묶인다. 우회로가 없는 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해협을 거치지 않는 내륙 송유관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송유관의 수송 용량은 호르무즈 해협 전체 물동량을 대체하기에 역부족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우회 루트를 활용할 경우 해상운임이 기존 대비 최대 80% 폭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조사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현재 배럴당 67달러 수준인 국제 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고, 세계 평균 물가 상승률이 0.6~0.7%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전면 봉쇄 장기화 시 배럴당 120~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봉쇄 한 달이면 한국 경제는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상황의 심각성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유가가 100달러 선을 유지할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현대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2%대 성장률 자체가 흔들리는 수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2~0.3%포인트 더 오를 수 있다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노무라증권 박정우 이코노미스트는 "원화 약세가 동반되면서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 0.3%포인트 또는 그 이상의 상방 리스크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해상운임 폭등이 겹치면 타격은 에너지 분야를 넘어선다. 정유·석유화학은 원료 수급 차질로 생산에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다. 항공업계는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때마다 연간 수백억 원의 추가 비용을 떠안는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항공권 가격과 주유소 기름값 상승은 그 뒤를 따른다.

◇ 이란도 손해인데, 왜 봉쇄했나

역설적이게도 이란 역시 원유 수출의 상당 부분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 해협을 봉쇄하면 자국 경제 생명줄도 함께 끊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란이 봉쇄 카드를 꺼내 든 건 전략적 계산에서다. 유가가 오르면 미국 유권자가 체감하는 휘발유 값과 생활비가 흔들린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에 가장 아픈 지점을 겨냥한 셈이다.

다만 봉쇄의 지속 가능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이 이미 바레인 미 제5함대에 파견됐고, 세계 최대 핵항모 제럴드 R. 포드함도 이스라엘 인근 해역에 배치됐다. 이란이 봉쇄를 고집할 경우 미국과 전면전이라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 변수는 결국 '얼마나 오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한국 경제에 어느 정도의 충격을 줄지는 결국 지속 기간에 달려 있다. 봉쇄가 수일~2주 수준에서 끝난다면 유가 충격은 일시적 변동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 달 이상 장기화하면 물가·금리·성장률의 연쇄 충격은 피하기 어렵다.

한재완 한국무역협회 물류서비스실장은 "단기적으로는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지만, 장기화할 경우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약 80%는 한국·일본·중국·인도 등 아시아로 향한다. 봉쇄가 길어질수록 타격의 중심축도 아시아로 옮겨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