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대봉동 건들바위 뒤편엔 '클리프1912'란 이름을 지닌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지역 기반 문화콘텐츠 개발을 실험해온 문화예술기업 ㈜딴짓이 2019년 문을 연 곳이다. 카페 공간인 대봉정을 중심으로 지역서점인 대봉산책, 전시 공간인 보이드갤러리, 공유오피스, 숙박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언뜻 보면 단순한 상업시설로 생각할 수 있지만, 역사와 문화를 매개로 지속가능한 도시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이 공간의 책임자는 이제 서른을 갓 넘긴 대구 출신 청년이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도원대(31) 씨가 총괄 디렉터를 맡고 있다. 그는 30대 초반의 젊고 신선한 감각으로 전시와 공연, 독서모임, 북마켓 등을 기획해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다.
최근 보이드갤러리에서 만난 그는 "이 일을 하며 도시의 지속성과 경쟁력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며 "대구를 살고 싶은 도시,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클리프1912'는 어떤 곳인가.
▶클리프1912가 자리 잡은 건들바위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품고 있다. 과거엔 '대구 10경'의 하나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며 선조들이 낚시와 풍류를 즐기던 장소였다. 일제강점기엔 일본 육군 고위급 장교의 관사가 있었다. 1970~80년대엔 라이브 카페 등이 들어서며 예술인과 젊은이들을 불러모으던 장소가 됐다.
㈜딴짓은 이 같은 역사성에 주목했다.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컷던 구성원들은 논의 끝에 건축물의 일부를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하는 등 역사를 품은 곳으로 꾸몄다. 이를테면 카페 대봉정의 경우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의 일부 구조와 타일 벽화 등을 남겨두는 식이다.
클리프1912란 명칭도 이 공간의 역사성을 상징한다. '클리프'(cliff·절벽)란 단어는 건들바위를, '1912'는 대봉정 건물의 건축연도를 의미한다. 사실 대봉정 건물의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일본군 관사 건물이란 점에서 1912년 정도로 추정해 이름 붙였다.
-이곳엔 각기 다른 공간이 유기적으로 얽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클리프1912의 핵심 시설은 카페 대봉정과 전시공간인 보이드갤러리, 책방 대봉산책, 숙박시설 북스테이션이다. 이들 공간에서 각기 다른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대봉정은 바리스타, 제빵, 로스팅 등 다양한 직무에서 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계절마다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과일로 케이크 등을 만들어 합리적인 가격으로 방문객에게 제공한다. 디저트와 어울리는 책을 제안하는 '북페어링' 서비스도 운영한다.
카페 아래층 대봉산책에선 꼭 책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숲 속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고전문학 서적과 그림책 등을 즐길 수 있다. 책방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보이드갤러리가 있다. 지역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전과 다양한 기획전시를 연중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엔 숙박시설인 북스테이션이 있다. 대구시 자연유산인 건들바위를 창 너머로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 공간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을 찾는 외지 관광객도 많아졌다.
비정기적이긴 하지만 야외마당을 활용해 지역 예술인들의 공연을 선보이거나 독서모임, 북마켓 등의 행사도 열고 있다.
-젊은 나이지만 클리프1912 초창기 때부터 일을 함께 했다.
▶대학 시절 우연한 기회에 ㈜딴짓 이사님 한 분을 소개받았다. 2019년 가을 대봉정이 문을 열기 전 인턴 형식으로 오픈 준비 작업을 함께한 게 계기가 됐다. 이듬해 2월쯤 보이드갤러리가 문을 열면서 외주 형식으로 갤러리 운영을 맡게 됐다.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전시 기획에 대한 경험은 없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성취감도 컸다. 하지만 사공이 많다보니 의견이 엇갈릴 때도 많았다. 결국 오래 가지 못했고 정리를 하게 됐다. 이후 이사님께서 정식으로 입사해 갤러리 운영을 제대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고, 현재에 이르게 됐다.
-㈜딴짓은 어떤 곳인가.
▶지역성과 문화 콘텐츠를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해온 문화예술기업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문화를 통한 도시재생과 장애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이 두 가지가 저희 회사가 가장 중심에 두고 가치를 두는 키워드다. 둘 다 수익창출이란 면에선 '돈 안 되는 사업'이지만, 이 같은 기업의 목표를 어떻게 하면 오래 잘 이어갈 수 있을까를 실험하고 있다.
현재 회사 직원 규모는 15명 정도로 이 가운데 10명 정도가 발달장애인 직원이다. 카페를 열게 된 것도 대중들이 가장 부담 없이 모일 수 있는 장소란 점도 있었지만,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직무를 좀 더 다양화해보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숙박시설도 여성 발달장애인의 직무 영역을 넓혀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비장애인들이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하듯 장애인도 직업 선택의 폭이 좀 더 다양해진다면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저희들의 생각이다.
-총괄 디렉터로서 업무량이 상당히 많을 것 같다. 특히, 전시 기획 등 갤러리 운영도 혼자 하고 있다.
▶그렇긴 하다. 돈을 버는 것에 가치를 둔다면 못할 것 같다. 특히 맡고 있는 사업장이 많다보니 세세한 것까지 챙기다보면 늘 시간에 쫓긴다. 그런 반면 성취감도 크다. 큰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면 힘은 들었지만 뿌듯한 감정이 크게 밀려온다. 그런 성취감이 있기에 계속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회사가 추구하는 뜻에 공감하고, 구성원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원동력이다.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크다.
-이 일을 하며 느낀 점도 많을 것 같다.
▶사실 전 스무 살 때까지만 해도 책을 잘 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을 하다 보니 사회에 대한 관심도 커지며 책을 많이 보게 됐다. 특히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하거나 기획을 할 때면 늘 책을 끼고 사는 편이다.
'도쿄는 어떻게 도시의 미래를 만드는가'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도시의 지속성과 경쟁력은 개발이 아니라 운영과 연결의 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도쿄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데 머물지 않았다. 지역과 사람을 이해하고, 자산을 브랜드화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에리어 매니지먼트'라는 개념을 통해 건물 단위가 아닌 지역 전체를 유기적으로 관리하고, 지역 특성에 맞춘 식음료, 문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도시의 매력을 끊임없이 갱신했다.
'결국, 도시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대구를 '살고 싶은 도시'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것, 최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화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