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밥 한끼 온정' 위해 20년 달렸다…김영복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

입력 2026-02-18 12: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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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재난재해 지역 종횡무진…장애인체육회 사진촬영 봉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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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이 봉사 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우리 사회 곳곳엔 따뜻한 한 끼가 필요한 이웃이 있다. '사랑의 밥차'는 30년 가까이 그런 이웃을 직접 찾아가 음식을 건네며 식사 이상의 따듯한 사랑을 전해 온 비영리 봉사단체다. 1998년 요리사 채성태 씨가 시작했다. 한 끼를 대접하더라도 정성이 담긴 따듯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을 구체화한 게 이동식 주방, 사랑의 밥차다.

영남권엔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가 있다. 김영복(73)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은 지난 20년 동안 이 단체를 꾸려온 인물이다. 그는 재난 현장이나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과 따뜻한 한 끼를 나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특기이자 취미인 사진 촬영을 통해서도 오랜 기간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오른쪽 손이 의수(義手)인 그는 수차례 사진전에 입상한 경력의 한국사진작가협회 소속 사진작가다. 그런 그는 1992년부터 최근까지 무보수로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사진을 촬영했다. 하계·동계 패럴림픽 등 최근 20여 년간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참가한 주요 장애인 체육대회 사진의 대부분은 김 지부장이 촬영했을 정도다. 2018년 평창 패럴림픽 때는 성화 봉송 주자로도 뛰었다.

김 지부장은 이 같은 열정적인 봉사활동으로 2018년과 2024년 두 차례나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지난해부터는 포항 월남참전전우회 회원들의 영정사진 촬영 봉사를 하고 있다.

최근 경북 포항 송도동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복 지부장은 "봉사는 큰 뜻을 품고 해야 하거나 결기가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누구나 할 수 있고 하면서 느끼는 것도 배우는 것도 많은 게 바로 봉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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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이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메인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영복 씨 제공

-사랑의 밥차 봉사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배우 정준호 씨와의 친분이 계기가 됐다. 2006년 무렵 정 씨가 장애인들과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사진 촬영을 해왔던 저와 인연이 됐다. 당시 정 씨는 사랑의 밥차 대표이자 봉사활동의 주축이었다. 그때부터 정 씨의 요청으로 사랑의 밥차 주요 행사가 있을 때면 사진 촬영을 하고 봉사활동을 함께 했다.

하지만 포항과 서울을 오가고, 전국을 돌며 봉사하는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그 무렵은 저도 다니던 철강회사를 막 퇴사하고 단체급식회사를 차려 기업체에 납품을 시작하던 터였다.

고민 끝에 정 씨에게 제안을 했다. 매번 전국을 돌며 봉사하려니 힘이 달려서 밥차 하나를 마련해주면 경상지부를 만들어 이쪽에서 봉사를 이어가겠다고. 그렇게 시작한 게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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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이 사무실 책상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벽면엔 그동안 사진촬영을 위해 다녀온 각종 국제대회 출입증이 빼곡히 걸려 있다. 김도훈 기자

-주로 어떤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나.

▶초기엔 어렵고 힘든 이들이 있는 곳만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음식을 즉석에서 해드렸다. 예를 들어 원하는 식당을 편하게 방문하기 힘든 장애인들을 찾아갈 경우, 그들이 함박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하면 그 즉시 소고기를 사와서 만들어드리는 식이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다보니 또 다른 곳에서 음식을 해달라는 요청이 오고, 그런 식으로 계속 봉사를 했다.

재난·재해가 일어난 곳엔 무조건 간다.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 2017년 포항 지진, 지난해 경북 북부지역 산불 피해지역이 대표적이다. 포항 지진 때는 육체적으로 가장 피곤한 시기였다. 포항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이재민을 위해 29일간 세끼 밥을 제공했다. 하루에만 4천명분 밥을 지었다. 지난해 산불 때는 안동·영양·청송을 방문해 4일 동안 이재민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했다.

경상지부라고 해서 대상 지역을 경상권에만 한정하지는 않는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2014년 세월호 사고 등 재난·재해 지역이면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평상시엔 끼니를 거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포항 송도솔밭에서 매월 2차례씩 국수 봉사를 하고 있다.

-사랑의 밥차는 어떻게 운영되나.

▶초기엔 제가 운영하던 회사 수익금 중에서 매월 150만~200만원을 적립해 사랑의 밥차를 운영했다. 이후 사랑의 밥차가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되면서 봉사 취지에 공감하는 회원들이 하나 둘 생겨났고, 지금은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 만큼 돈과 관련한 부정이 개입할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2018년 4월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를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부장인 저나 사무국장은 당연히 무보수 봉사직이다. 고마운 건 회원들이 회비를 내면서 직접 봉사활동에 나선다는 점이다. 자녀들까지 함께 와서 힘을 보태기도 한다.

송도솔밭에 운동하러 오는 분들 중에서 가끔씩 국수를 드시고는 1만원이나 5만원을 두고 가기도 한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련한 국수를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드셨으니,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거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손은 어쩌다 다치게 된 건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이 고향으로, 화성에서 오래 살았다. 22살이던 1975년 화성에 있는 한 철강회사에 입사했는데 입사 4년차 때인 1978년 회사에서 안전사고로 오른쪽 손을 절단하게 됐다. 이후 회사의 배려로 줄곧 관리업무를 맡아서 하다가 1990년대 말 회사가 포스코와 가까운 곳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낯선 포항 땅을 밟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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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이 사무실 책상 앞에서 왼손을 이용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벽면엔 그동안 사진촬영을 위해 다녀온 각종 국제대회 출입증이 빼곡히 걸려 있다. 김도훈 기자

-한국사진작가협회 수원지부 회원이다. 사진은 언제 시작했나. 셔터를 오른손 검지로 눌러야 하는 카메라의 특성상 촬영할 때 불편함은 없나.

▶초등학교 때 살던 집 바로 옆이 사진관이었다.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셨는데, 호기심에 자주 놀러가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중학교 때 아버지께서 중고 카메라 1대를 사주셨는데, 이 카메라를 다루게 되면서 사진 촬영에 익숙하게 됐다.

사실 손을 다치기 전엔 카메라를 즐겨 잡지 않았다. 모든 건 손을 다친 뒤에야 이뤄졌다. 수술 후 직장 내에 사진 동아리를 만들었다. 회원들 교육을 하게 되고 공모전에서 연이어 입상하면서 큰 재미를 느꼈다.

회사에서도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 특히 회장님께선 저를 '사진작가'라고 부르며 좋아하셨다. 그 덕분에 사진전도 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세계적인 장애인 스포츠대회 홍보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도 회사 측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1개월 가까이 나가 있어야 하는 패럴림픽 때는 단순히 '다녀와라' 정도가 아니라 휴가비까지 줄 정도로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 그 덕분에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 패럴림픽 때부터 200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때까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지금은 눈여겨 봐둔 후배 사진가에게 장애인체육회 사진 일을 물려주고 '탈출'했다. 사진 촬영에 있어선 일반인에 비해 조금의 불편함이 있지만 그립을 활용한다던지 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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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사랑의 밥차' 경상지부장이 2016년 리우 하계 페럴림픽 때 촬영한 사진이다. 김영복 씨 제공

-지난해부터는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영정사진을 찍어주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지난해 포항 월남참전전우회 측의 요청으로 지난해 200여분의 사진을 촬영해드렸는데 다들 좋아하셨다. 올해도 조만간 촬영 일정이 잡힐 것 같다. 다들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부지런히 촬영해드려야 할 것 같다.

-7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다. 사랑의 밥차 봉사는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제가 시작을 했으니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않나.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생각이다. 다만 지부장을 맡아 '사랑의 밥차'를 이끌 적당한 분이 있다면, 이제 저는 후임 지부장을 서포트하는 정도로, 뒤에서 조용히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그래서 적당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다. 이게 무보수 봉사활동 아닌가.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 돈을 쓰는 사업이어서인지 선뜻 뛰어드는 사람이 없다.

70대에 접어들면서 2년 전쯤 본업에서 은퇴했다. 봉사가 없는 날엔 사진촬영도 하며 지금껏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도 다니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랑의 밥차를 전담해야 하기에 여전히 족쇄를 찬 것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다. 지금도 계속 찾고 있다. 괜찮은 분 있으면 소개 좀 시켜 달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