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귀향길…조선인 136명 수몰된 장생탄광, "국가적 지원 있어야"

입력 2026-02-18 14:49: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전영복 일본장생탄광희생자 대한민국유족회 사무차장 인터뷰
"한일 양국이 적극적으로 유해 발굴·조사 나서야"

전영복 일본장생탄광희생자 대한민국유족회 사무차장이 1942년 장생탄광 수몰사고 당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위패가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전영복 일본장생탄광희생자 대한민국유족회 사무차장이 1942년 장생탄광 수몰사고 당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위패가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명절날이나 제삿날, 집안 어른들이 모일 때마다 어린 전영복(60) 씨는 아버지 전석호(94) 씨의 회고록을 들었다. 언제나 멀고도 가깝게 느껴졌던 가족의 비극. 1942년, 일본에서 광부 일을 하시던 영복 씨의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날의 이야기였다.

◆장생탄광 매몰, 희생자 절반 '대구경북민'

"탄광이 매몰됐단다. 빨리 가 봐라."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초등학생이던 영복 씨의 아버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등교했다. 수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오전 시간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전해 왔다. 영복 씨의 할아버지가 일하는 장생탄광(조세이 탄광)이 무너졌다는 소식이었다.

긴장으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안고 탄광으로 향한 어린 아버지가 마주한 장면은, 갱도 입구가 무너져 갱구 머리끝까지 물이 차 있는 모습이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이들만이 손 쓸 수 없이 내려앉은 갱도를 보며 울음을 토해낼 뿐이었다.

그날, 해저탄광에서 작업하던 총 183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워낙 작업 환경이 열악해 현지 노동자들이 기피하기로 유명했던 조세이 탄광은 조선인들이 많이 일해 '조선탄광'이라고도 불렸다.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모집' 형태 등으로 동원된 1천 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일상을 통제받았다는 증언까지 나오는 곳. 그곳에서 숨진 이들 중 136명은 조선인이었고, 그중 영복 씨 할아버지를 포함한 75명은 대구경북 출신이었다.

아버지와 가족들은 보상금도 받지 못한 채 사택에서 쫓겨났다. 국가의 탄광 증산 정책에 따라 안전기준을 무시하고 채굴을 강행하던 회사는 사후 관리 책임조차 제대로 지지 않았다. 영복 씨 할머니 홀로 오 남매를 키워야 했기에 생계는 늘 고단했다. '그래도 내 나라가 낫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으로 해방 언저리쯤 한국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그날의 참사를 평생토록 잊을 수 없었다.

◆희생된 할아버지, 후손으로서 의무감

"할아버지가 거기 계시니까 제가 다해야 하는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복 씨는 현재 장생탄광 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에서 사무차장을 맡고 있다. 유족 대부분이 고령인 만큼,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이 나서야 소통이 빨라진다는 판단에서 유족회 사무국을 조직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유족회 일을 맡은 시점은 지난해 9월이다. 아버지께서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할 때마다 함께했던 형이 수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연로한 부모를 그저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던 영복 씨는 유족회 전면에 나서게 됐다.

이후 유족회는 우리나라 정부, 1991년부터 활동해 온 일본 시민단체 '장생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회(새기는 회)' 등과 면담을 실시하고 유족 DNA 확보를 진행했다. 유해가 발굴되기만 하면 DNA 대조를 할 수 있지만, 발굴 비용이 만만찮다는 점이 문제다.

2024년 9월 갱구 발굴과 지난해 8월 유골 일부 발굴 등 성과는 '새기는 회'의 모금과 뜻있는 이들의 자원봉사가 이뤄낸 결과다.

영복 씨는 갱구가 발굴된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강대식, 김준혁 의원 등이 사건 진상규명과 관련된 법안을 발의했고,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정상이 발굴된 유골에 대한 DNA 공동 감식을 합의했다. 이후 일본의 유골 책임 부처인 후생노동성 관계자들이 현장을 방문했고, 현지를 방문한 유족들에게 일본 경찰이 서에 안치된 유골을 보여주는 등 괄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발굴 비보에 멈춰…국가차원 지원 필요

지난 6일 유골 발굴을 위한 수중 조사가 시작된 지 3시간 만에 호주 잠수사가 두개골을 발견하자 현지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하지만 다음날 추도식을 진행하던 도중, 안타까운 비보가 현장에 전달됐다. 대만 국적 50대 잠수사가 유골 수색 도중 사망한 것이다. 11일까지 예정됐던 조사는 전면 중단됐고, 일본 후생성과 경찰, 외교 당국이 경위 파악에 나섰다.

영복 씨는 "일본 청소년들이 잠수부들에게 꽃목걸이를 전달하려던 순간 사고 전화가 걸려 왔다. 유해를 찾기 위해 자원해서 온 분이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겁고 미안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추가 희생을 막으려면 발굴과 조사 작업에 국가 차원의 제도와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국회 차원의 특별법 제정과 지속적인 예산 지원을 강조했다. 민간 모금과 자원봉사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위험한 해저 수색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영복 씨는 장생탄광 참사를 통해 국가가 힘을 잃지 않고 시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억해달라고 했다. 동시에 그는 유해를 각자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한국에 추모 공간과 추모탑을 세워 아픈 역사를 오래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양국 정부가 DNA 조사라는 첫발을 뗀 만큼,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유해가 발굴될 수 있도록 나섰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