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33>명마의 신준(神俊)함을 그려낸 백련 지운영

입력 2026-02-04 09: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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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지운영(1852~1935),
지운영(1852~1935), '준마도(駿馬圖)', 1923년(72세), 종이에 수묵채색, 132.4×61.8㎝, 개인 소장

말은 값비싼 재산인 귀한 동물이었다. 가축을 마우돈구(馬牛豚狗)로 꼽은 것은 말, 소, 돼지, 개의 순서로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이동이나 운송 수단을 넘어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는 군마(軍馬)였고 지배자의 권력(Power)과 위신(Prestige)이 드러나는 위세품이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정복자에게는 애마가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제왕의 말은 8마리 준마인 팔준이다. 주 목왕의 팔준, 당 태종의 팔준이 유명하다. 조선 태조도 팔준이 있었다.

명마의 초상화(?)라고 할 마도(馬圖)가 당나라 때부터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당 현종이 한간(韓幹)에게 스승의 화법을 따르라고 하자 그는 "폐하의 마구간에 있는 일만 마리가 모두 저의 스승입니다"라고 호기롭게 대답했다. 중국 고전 '한비자'에 개나 말이 가장 그리기 어렵고, 귀신이나 도깨비가 가장 쉽다는 말이 나온다. 누구나 봐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간은 실제의 말을 스승으로 삼아 말 그림의 대가가 됐다.

말 그림을 잘 그린 우리나라 화가로 윤두서와 윤덕희 부자가 꼽힌다. 윤두서는 말 그림을 그릴 때면 마구간 앞에서 종일토록 말을 관찰했다. 윤두서 또한 말을 스승으로 삼아 말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조선 초기부터 말 그림의 전통이 있었다. 세종이 안견에게 태조의 팔준을 그리게 한 기록이 있고, 숙종의 하명으로 그린 팔준도가 전하고 있다. 1910년대 팔준도가 조석진, 안중식의 작품으로 남아있지만 근대기 말 그림의 대가는 백련(白蓮) 지운영이다.

지운영의 '준마도'는 배경을 과감히 생략하고 흰 공백으로 남겨둠으로써 오로지 준마에 시선을 집중하게 한다. 길게 뻗은 목을 돌려 오른쪽 위를 응시하는 자세는 마치 무언가에 반응하여 멈춰 선 듯한 찰나의 긴장감을 담고 있어 정적인 구도 속에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다. 예로부터 준마는 준걸에 비유됐다. 탄탄한 근육과 강렬한 눈빛의 한 마리 외로운 준마는 잘 그린 말 그림을 넘어 1923년이라는 암울한 시대의 초상인 듯하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관우의 적토마를 상상하며 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병오년 붉은 말의 해에 천리마의 기세로 뻗어나가시기를….

대구의 미술사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