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그 한 명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입력 2026-02-04 09: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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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명
김숨 지음/ 현대문학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내가 김숨을 처음 본 건 2023년 6월 4일 대구YMCA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였다. 고백하자면 이때까지 읽은 김숨의 소설이라고는 『국수』가 전부였지만, 내 책에서 언급했을 만큼 깊은 인상을 받았기에 육성으로 만나고 싶었다. 읊조리듯 작지만 또렷하고 단단한 목소리. 내면이 강한 사람이고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느꼈다.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졌다.

김숨은 2016년 이한열 열사의 사라진 운동화 한 짝을 복원하는 『L의 운동화』를 작업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떻게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가, 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게 동일 선상에서 복원의 문제를 놓고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한 명』이 세상에 나온다. 책이 출간되기 바로 직전 곧 2015년 12월 28일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 명』은 생존 일본군 위안부 숫자가 두 명에서 한 명만 남게 된 가상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 소식을 들은 화자는 나직이, 중얼거린다. "여기 한 명이 더 살아 있다……." 이제부터 김숨은 화자를 통해 만주 위안소와 현재를 오가는 플래시백으로 지옥 같은 시절을 증언하고 마침내 결단의 발걸음으로 이끌 것이다. 작가 자신에게는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뿌리 뽑힌 사람들, 그들이 어찌하여 돌아왔지만, 여전히 떠도는 존재들에게 교감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열망의 현재화이고, 독자에게는 역사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요청일 터.

재현의 윤리를 문제 삼은 페미니즘 비평가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한 명』. 그러나 단언컨대 나는 변영주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3부작>이 가진 의미와 가치에 못지않을 정도로 빼어나고 담대한 작품이라고 자평한다. 일부 비평가들이 제기한 문제, 즉 너무 리얼하고 디테일하여 읽기 힘들 뿐 아니라 피해자를 대상화·객체화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얘기. 거칠게 말하자면 그들은 메타포와 환유와 상징만으로 끔찍한 역사의 현장을 충분히 진술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증언 문학이 그렇듯이 시작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증언과 고발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 단계를 바탕으로 진실 규명과 해결을 모색하는 시점에야 비로소 문체는 진정되고 서사의 틈입이 허용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김숨이 전하고자 하는바, 삼인칭 위안부 '그녀'를 통해 고통의 현재화를 재현하는 방식은 적절하고 성실하다. 작중 화자의 독백처럼 "또 뭐라고 써야 하나? 막막해하던 그녀는, 자신이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한 시간 전에 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70년도 더 전의 일은 기억이 난다. 위안소 방 천장에 매달린 알전구가 깜박깜박하던 것까지." 그럼에도 "모든 걸 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했으면 오늘날까지 살지 못했으리라."고 탄식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일본군 위안부라는 거대한 역사 앞에서 자기 이름 석 자도 쓸 줄 모르던 소녀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걸 고려도 않고, 앞뒤가 맞지 않고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말하지 못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샘에 물 길으러 갔다가 붙잡혀온 열두 살 영순의 이야기를 읽어주고 싶다.

"영순은 기숙 언니가 군인들을 받던 다다미 위에서 군인을 받았다. 기숙 언니가 입던 간탄후쿠를 입고, 쓰다 남긴 휴지를 쓰고, 기숙 언니가 씻어 말려둔 삿쿠를 썼다. 다음 날 아침, 영순은 소녀들의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