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종 리엔경제연구소장(경제학박사)
대외 관계 전략은 완벽할 수도 완벽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전략적 미세조정(Fine Tuning)은 필요하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전략적 다각화 외교가 필요한 시기에는 일관되고 투명한 외교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
제2기 트럼프(Trump) 행정부의 출현과 함께 미국의 대외 경제 정책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워싱턴은 동맹국과 경쟁국을 가리지 않고 관세를 부과하고, 대외 원조를 삭감하며, 무역 협상을 공격적으로 재협상하고, 다자간 외교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마치 지난 20세기 중반 이후 자신이 베풀었던 모든 자비와 사랑이 무료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한다. 영어로 학교에서 왕따를 주도하거나,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를 '불리(bully)'라 한다. 미국은 '불리'처럼 행동하고 있다. 중국의 대미 포위전략의 전초기지라 여겨진 파나마 운하를 사들이고,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을 야밤 기습을 통해 체포하고,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국 덴마크의 그린랜드도 자신이 가지겠다고 한다. 캐나다 총리를 '주지사'로 부른다.
전 세계 국가들이 미국과의 거래를 점점 더 경계하게 되면서, 그들은 미국의 주요 경제적 경쟁자인 중국으로 점점 더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스타머 영국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다. 목적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 등 미국의 불확실한 정책에 대응하여 경제적 생존권을 확보하고 브렉시트 이후의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전략적 재조정'이다. 이번 방문에서 영·중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에 합의했으며, 영국인 비자 면제 검토 및 서비스 무역 협상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런던 내 대규모 중국 대사관 건립을 승인하며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양국간 대화 내용 중에는 경제적 기회 포착과 더불어 지미 라이(Jimmy Lai) 석방 등 인권 문제에 대해 "성숙하고 솔직한 토론을 병행하겠다"는 점도 포함되었다. 동행한 기업인 및 사절단 규모만 해도 약 60명의 영국 내 주요 기업 및 문화기관 대표단이 동행했다. 금융업계의 HSBC, 제약 대기업 GSK, 자동차 제조사 재규어 랜드로버(Jaguar Land Rover), 그리고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 수장 등이 포함되었다.
다른 유럽 및 서방국 입장도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캐나다 마크 카니 총리 역시 2026년 1월 방중하여 전기차 및 카놀라유 무역 제한 완화에 합의했다. "패권국(미국)에 저항하며 독자적 노선을 걷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지난 2025년 12월 방중하여 항공, 원자력 등 전통적 협력과 더불어 AI 등 신산업 협력을 논의하며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한다. 핀란드 총리를 비롯해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도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 위협'과 관세 압박에 맞서 유럽 차원의 공동 대응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서방 국가들은 미국의 압박과 중국의 경제적 기회 사이에서 실리를 챙기는 줄타기 외교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흐름은 2025년 중국의 수출 급증에 기여한 여러 요인 중 하나이며, 그 결과 중국은 전년 대비 20% 증가한 약 1조2천억 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사실 워싱턴의 정책은 중국에 두 가지 측면에서 호재가 되었다. 미국과 협력하는 대신 대안을 찾는 파트너들에게 중국의 경제적 제안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압박 전술은 중국이 타국을 강압하는 것을 더 용인되는 분위기로 만들었다. 어부지리(漁夫之利) 전략이다.
물론 중국은 이들 대부분 국가들을 자신의 궤도에 완전히 끌어들이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 중국의 대내외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반대를 최소화하는 전략적 가치는 충분히 이해하는 듯하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의 거의 모든 대내외 정책의 근간은 미국 의존도였다. 새롭게 다각화되어 가는 21세기 후기 문명사회의 국제관계 속에서도 이러한 우리의 대외정책 기조는 유효한가? 아니면 어떤 재조정의 준비를 해야 하는가?
경쟁에서 패배는 대개 '타이밍'을 잃은 경우다. 그렇다고 절박하게 매달리거나 아부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친중과 친미 논쟁은 유치하다. 미래를 이기기 위한 새로운 '조건부 전략'이 필요한 시기인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