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마주하면서, 유엔 헌장의 기초자들은 이러한 대재앙이 다시는 이 땅에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꿈꾼 지구촌은 국가들이 대등한 입장에서 선량한 이웃으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국가 간 다툼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약속하였고, 동시에 무력 사용 및 그 위협을 금지하는 '무력사용금지원칙'도 수용하였다.
지난 81년 동안 국제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방파제로서 작동해 온, 유엔 헌장상의 '무력사용금지원칙'은 때때로 강대국들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곤 했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과 충돌되는 경우, '자유와 인권의 수호' 내지 '국내법 집행'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둘러대서 무력 사용을 정당화해 왔다.
그런데 최근의 무력 사용, 예컨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베네수엘라의 마두로(MADURO) 전 대통령 압송 작전,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의 병합 움직임 등에서는 거추장스럽던 포장지마저 아예 벗어던진 채 돌진하는 모양새이다. 그 다음 타깃은 어쩌면 캐나다와 쿠바가 될 것이고, 그다음은….
이처럼 무력 사용(전쟁)을 통한 이익의 강탈이 거대한 흐름으로 퍼져가는 현실은 유엔 헌장을 한낱 종이 조각에 불과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어쩌면 유엔 시대가 종언(終焉)을 고하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폭넓게 작동하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유엔 헌장의 기초자들이 영속될 것으로 믿었던 무력 사용의 금지라는 신념이 흐트러진다면, 그들은 한 세기도 버티지 못하고 폐기될 위기에 처한 자신들의 신념을 끌어안고 통곡할지도 모른다.
통계에 의하면, 역사의 기록이 남아 있는 기원전 1496년 이래 지금까지, 약 3천500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단지 227~268년에 불과하다. 실제로 불과 120년 전만 하더라도, 국가 간 다툼이 발발한 경우에, 국가는 전쟁에 호소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시대를 대변하는 대표적 이론이 '무차별전쟁관'이다. 전쟁을 서부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일종의 '결투'와 같은 것으로 인식한,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전쟁을 바라보는 주류적 관념이었다.
전쟁을 불법시한 최초의 국제적 문서가 1907년 제2차 헤이그평화회의에서 채택된 '포터(Porter) 조약'이고, 그 완결판은 유엔 헌장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당연시되고 있는 '무력사용금지원칙'이 도입된 것은 81년 전의 일에 불과하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벌이고 있는 '힘의 지배'는,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유별난 지도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러한 도전 앞에서, 세계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국제평화주의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제국주의로 회귀할 것인가? 이는 전적으로 세계인의 몫이다. 만약 세계의 평화를 원한다면, 분연히 일어나서 평화를 쟁취하는 일에 함께해야 한다. 81년 전, 유엔 헌장의 기초자들이 가졌던 '평화 공존'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급변하는 안보 환경 속에 놓인 대한민국도 이러한 흐름을 잘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평화주의의 길은 힘과 간절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도 '자주국방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강조하였다.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차근차근 준비할 때이다.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