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화재 소식은 늘 뒤늦게 찾아온다. 불길이 잦아든 뒤, 남은 것은 그을린 기둥과 "왜 지키지 못했을까"라는 후회뿐이다. 수백 년을 버텨온 문화유산이 한순간의 화마에 무너지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문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전통 문화재는 목조 구조물이다. 구조적으로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관리 체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소화 설비 부족, 상시 감시 인력 부재, 전기·난방 시설의 노후화 등 위험 요인은 수차례 지적돼 왔다. 그럼에도 대형 화재가 발생한 이후에야 대책이 논의되는 후행 행정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재는 복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원형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한 번 사라진 시간의 흔적은 어떤 기술로도 완전히 재현할 수 없다. 그만큼 문화재 보호에서 예방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화재 감지 시스템의 현대화, 야간과 비상 상황을 고려한 상시 대응 체계 구축, 지자체와 소방 당국의 정기적인 합동 점검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특히 지정 여부를 떠나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비지정유산에 대한 관리 공백은 심각한 문제다.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유산일수록 화재 위험은 더 크다.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호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구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25분쯤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에서 발생한 주택 화재로 경북도 유형문화재인 금양정사와 관리동 일부가 소실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500여 년의 역사를 품은 문화재는 불길 앞에 무너졌다.
금양정사는 조선 전기 문신 황준량(1517~1564)이 만년에 학문을 닦고 뜻을 숨기기 위해 16세기 중반 건립한 정사다. 병자호란 당시 한 차례 소실됐다가 1701년 풍기군수와 후손들의 협력으로 중건됐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황준량은 퇴계 이황과 교유한 인물로, 학문과 인품을 두루 갖춘 선비로 평가받는다. 단양군수 재임 시에는 흉년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명종에게 '단양진폐소'를 올려 세금 감면과 공물 부담 조정을 이끌어냈다.
성주목사 재임 중 47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퇴계 이황은 "하늘이 어찌 이리도 빨리 데려가는가"라며 통곡했고, 직접 그의 행장을 써 내려갔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황준량 선생은 학문과 인품, 삶의 태도 모두에서 깊은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청빈'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비이자 목민관이었다.
그러한 선생이 생전에 반드시 완성하고자 했던 금양정사가 이번 화재로 원형을 잃게 됐다. 금양정사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가치와 정신이 머물던 자리였기에 더욱 안타깝다.
이번 화재는 한 문화재의 소실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지역 문화유산 관리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유사한 사고를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 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영주시는 일부 주요 문화유산인 부석사와 소수서원, 성혈사, 무섬마을에만 안전경비원을 배치하고, 나머지 문화재는 지정 여부와 관계없이 연 1회 정기 점검에 의존하고 있다.
불은 한순간이지만, 문화재는 영원해야 한다. 이제는 사고 이후의 복구가 아니라, 사고 이전의 예방으로 행정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다. 말이 아닌 실질적인 행동으로 문화유산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같은 후회는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