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이송 중 사망한 군의관…40년의 유가족 눈물 닦아준 법원

입력 2026-01-20 15:12:26 수정 2026-01-20 15: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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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국가배상법 적용… 지역서 처음으로 유족 위자료 인정 판결 나와
'이중배상금지'의 50년… 헌법에 남은 베트남전의 후과

이병희 제57대 대구변호사회협회 회장
이병희 제57대 대구변호사회협회 회장

40년 전 군에서 환자를 후송하다 사고로 숨진 군의관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전사하거나 순직한 군인·경찰공무원의 유가족이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국가배상법 개정 이후 대구·경북 지역에서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인정된 첫 판결이다.

◆ 국가배상법 개정 이후 지역서 첫 유족 위자료 인정 판결

대구지법 제17민사단독은 지난 16일 고(故) 이 모 씨의 유족 3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배우자와 자녀 등 원고들에게 총 5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씨는 1985년 4월 군의관으로 입대해 강원 강릉의 한 부대에서 의무중대장으로 복무했다. 1986년 1월 환자를 후송하기 위해 군 앰뷸런스에 탑승했다가 차량이 벼랑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로 숨졌다. 이 씨는 순직 군경으로 인정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고, 유족은 보훈보상자법에 따라 보훈연금을 지급받아왔다. 그러나 한순간에 가장을 잃은 비극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받을 수 없었다. 국가에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가배상법은 '이중배상금지' 원칙에 따라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등이 전사·순직으로 보상받으면 본인과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다.

국회는 2024년 12월 10일 국가배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제2조 제3항에 "유족은 자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개정법은 지난해 1월 7일부터 시행됐으며, 시행 이후 발생한 전사·순직 사건에만 적용하되 시행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적용하도록 했다. 이 씨 사건은 2023년에 소송이 제기돼 시효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사고로 배우자는 남편을, 자녀들은 만 3세와 만 1세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며 "배우자가 현재까지 보훈급여를 수령하고 있는 사실은 인정되나, 그 급여에 유족 고유의 정신적 손해배상이 포함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 원고 측 법률대리인은 이병희 변호사(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로, 그는 사망한 이 씨의 처남이기도 하다. 이 변호사는 "우연인지 모르지만 망인이 순직하신 지 딱 40년이 흐른 지난 16일에 판결문을 수령했다"며 "피고는 개정 국가배상법의 취지대로 유족인 원고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이 사건 판결을 수용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헌법에 남은 베트남전의 잔재… '이중배상금지' 50년사

국가배상법의 이중배상금지 조항은 헌법 제29조 제2항에 근거한다. 이 조항은 군인, 군무원, 경찰공무원이나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해 받은 손해에 대해서는 법률이 정하는 일정한 보상 외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국가배상법이 처음 제정된 1951년에는 이중배상금지 규정이 없었으나, 1967년 박정희 정부 시기 삽입됐다. 베트남전 파병으로 전사·순직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국가가 보상 이외에 손해배상까지 해줄 경우 국가 재정이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규정됐다.

197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평등권 침해 등을 이유로 국가배상법상 이중배상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위헌 의견을 낸 대법원 재판관 9명과 법관 48명이 재임용 과정에서 배제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 다음해 공포된 유신헌법에서 이중배상금지 조항은 헌법 규정으로 격상됐다. 이듬해 정부는 국가배상법을 다시 개정해 조항을 구체화했다. 1987년 개헌 당시에도 권력 구조 개편 등 당면한 현안에 밀려 개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영남대 로스쿨 원장을 지낸 금태환 변호사는 "국가배상은 최대한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전제로 이중배상금지 규정을 조화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현행 헌법 체계에서도 가능한 문제이나, 그동안 조문이 지나치게 축소 해석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이중배상금지 조항은 군인을 포함한 공무원의 재정 부담 문제를 고려했던 시기의 산물"이라며 "현재는 국가 경제 규모나 재정 여건이 달라진 만큼 점진적인 보완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