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성현] 노동이 살아야 지방이 산다

입력 2026-01-27 09:5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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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자화전자 노사협력팀장.
김성현 자화전자 노사협력팀장.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장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본질은 다르다.

일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일자리가 청년의 삶을 지탱하지 못하는 구조가 돼버린 것이다. 기업은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청년은 "일할 곳이 없다"고 말한다. 중장년과 고령층은 "쓸 곳이 없다"며 밀려난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지방의 노동 현실이다.

지방의 산업단지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생산 라인은 멈추지 않고, 기업은 채용 공고를 내고 있다. 그런데도 현장은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다. 표면적인 이유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이지만, 더 깊은 이유는 따로 있다. 지방의 노동은 미래로 연결되는 경로가 없고, 생애 설계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에게 지방의 일자리는 '경력'이 되지 못하고, 단지 '버티기 위한 노동'으로 인식된다. 숙련을 쌓을 기회, 기술을 학습할 통로, 직무가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는 경사(傾斜)가 부재하다. 결국 청년은 지방에서 출발해 서울에서 커리어를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놓인다. 지방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서는 살아갈 수 없어서 이동하는 것이다.

반면 중장년과 고령층의 노동은 '퇴출 이후의 노동'으로 분류된다. 경험·판단·관계 자본을 오랜 세월 축적했음에도, 그 가치는 제도 속에서 환산되지 않는다. 정년과 동시에 축적된 역량은 제도 바깥으로 밀려나고, 공공형 단기 일자리로 흩어진다. 우리는 고령층을 부양의 대상이자 비용의 주체로만 바라보며, '일하는 베테랑 세대'라는 자산을 스스로 놓치고 있다.

결국 지방 노동시장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젊은 세대는 떠나고, 중장년은 멈추고, 고령층은 낮은 강도의 일로 분산된다. 그 결과 지방은 노동은 있으나, '노동의 의미'가 사라진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 문제는 임금 인상이나 단기 지원책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방 노동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지방의 일자리를 단순 생산직·보조직이 아니라 기술·공정·품질·데이터 기반의 숙련 직무로 재정의 해야 한다. 청년에게는 '기술학습→직무고도화→경력승급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를 제시하고, 중장년에게는 현장 운영·품질관리·멘토링·안전관리 같은 경험 기반 역할을 제도화해야 한다. 고령층은 복지 대상이 아니라, 지식·경험을 전수하는 생산적 주체로 전환돼야 한다.

노동을 나이로 구분하는 사회에서 세대는 갈등한다. 노동을 역할로 재구성하는 사회에서 세대는 공존한다. 지방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장이 아니라, 더 나은 노동의 질서다.

청년이 떠나는 지방이 아니라, 살아볼 만한 미래를 제시하는 지방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방에서 일한다는 것이 삶을 미루는 선택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선택이 되는 그날, 대한민국은 비로소 '노동이 있는 지방'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