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핵심 산업 잠식 가속화…이지스 매각 논란으로 경고음
곳곳에 퍼진 중국의 자본 침투…우회로 사모펀드로 침탈 교묘해져
국회서도 제도 개선 움직임 …김상훈 의원 "악성 PEF 알짜 기업 잠식 방지법 발의"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영권 매각 논란으로 중국 자본의 위험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국계 사모펀드로 분류되는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자금 6조원이 투입된 핵심 자산이 외국 자본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지스운용 매각, 차이나머니 논란 재점화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국내 연기금이 6조원가량 투자한 이지스운용의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중국계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힐하우스는 중국 출신 장레이가 2005년 미국 예일대 시드 자본으로 설립한 글로벌 사모펀드다. 주요 출자자의 93%가 미국·캐나다 등 서구권 연기금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창업자가 중국 출신이고 초기 중국 빅테크 투자로 성장한 만큼 '중국계 자본'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지스운용은 실사 단계에서 국민연금의 사전 승인 없이 위탁자산 내역을 인수 후보자들에게 넘긴 것으로 드러나면서 우려를 키웠다. 설정액과 평가액, 자산 구성 등 민감한 정보가 무단으로 공개되자 국민연금은 즉각 투자위원회를 열고 위탁자금 2조원(시장 평가액 7조~8조원) 전액 회수 방안을 논의했다.
입찰 과정의 공정성 논란도 불거졌다. 본입찰에서 최고가 1조500억원을 제시했던 흥국생명을 제치고 힐하우스가 1조1천억원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배경에 의혹이 제기됐다. 흥국생명은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가 사전 고지 없이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을 적용해 입찰가를 힐하우스에 유출했다고 주장하며, 이지스 최대주주 등을 공정 입찰 방해 및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지스운용이 단순한 부동산 회사가 아니란 점도 우려를 증폭시킨다. 부산항 신항 양곡부두 개발, 대규모 데이터센터,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사업권 등 국가 핵심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힐하우스가 경영권을 확보한다면 중국 자본이 식량 안보와 데이터 통신망, 전력망에 접근할 수 있는 합법적 통로를 손에 넣게 되는 셈이다.
국민연금이 투자금을 회수하고 다른 연기금들도 이탈할 경우 매각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라는 최종 관문도 남아 있어 향후 매각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곳곳에 퍼진 중국의 자본 침투
업계에서는 이지스 사태가 일회성 논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차이나머니는 이미 한국 경제 곳곳에 깊숙이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중국의 국내 상장주식 보유액은 22조7천10억원으로 작년 말 14조570억원 대비 62% 급증했다. 반도체·바이오·콘텐츠 등 미래 산업 종목에서 중국 자본의 지분 확대 움직임이 뚜렷하다.
국채 시장 침투는 더욱 가파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한국 국채 보유액은 138조원으로 유럽(109조원), 미주(27조원), 중동(14조원)을 모두 앞질렀다. 2021년 말 대비 38조원 증가한 규모는 같은 기간 미주 증가액(7조원)의 5배가 넘는다.
국채 보유 집중은 금융 리스크를 넘어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자 중국은 미 국채를 대규모 매각했고, 이는 미국 장기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보유 국채를 일시에 처분할 경우 증시 폭락과 환율 급등이라는 이중 충격에 직면할 수 있다.
중국 자본의 '먹튀' 논란도 적지 않다.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된 쌍용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상하이차는 2008년 금융위기를 핑계로 쌍용차의 핵심 SUV 기술력만 빼돌린 뒤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직원 2646명을 구조조정한 채 철수했다. 2018년 중국 더블스타에 인수된 금호타이어 역시 핵심 기술 유출, 국내 생산 기반 축소 등 우려로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최근엔 중국 자본이 더욱 교묘하게 국내 기업을 잠식하고 있다. 직접 인수 대신 사모펀드를 활용한 우회 전략이다.
글로벌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는 SK렌터카에 이어 롯데렌탈까지 인수하며 국내 렌터카 1·2위 업체를 모두 장악했다. 어피니티는 삼성전자 출신 박영택 전 회장이 말레이계 중국인 탕콕유 창립회장과 2004년 설립한 PEF 운용사다. 어피니티는 "동사는 중국계 펀드가 아닌 글로벌 PEF"라고 부인했지만 시장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시도한 MBK파트너스에도 중국계 사모펀드라는 낙인이 찍혔다. MBK가 결성한 6호 펀드의 출자 구성은 한국 20%, 해외 80%로 알려졌으며, 이 가운데 중국 자본 비중은 5% 이상으로 추정된다. 시장에서는 중국계 사모펀드가 고려아연을 운영하게 되면 핵심 광물 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악성 사모펀드의 알짜기업 잠식 막아야"
전방위로 확산하는 중국 자본 유입에도 이를 방지할 만한 제도는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국회에선 악성 사모펀드의 국내 기업 인수를 방지하기 위한 법 개정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대구 서구)은 MBK파트너스 사태와 같은 과도한 차입매수 및 외국 자본 의존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자본시장법' 및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최근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사모펀드의 차입 한도를 현행 순자산의 400%에서 200%로 절반 축소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외부 전문평가기관의 부채상환 능력 심사를 통과하면 기존 한도를 허용해 건전한 인수·합병은 위축되지 않도록 했다. 또한 사모펀드가 투자 대상기업으로부터 받은 배당 등 이익의 일부를 5년간 해당 기업에 재출자하도록 의무화했다.
김상훈 의원은 매일신문에 "과거 쌍용차나 금호타이어 사태에서 보듯 중국 자본은 기술만 빼가고 떠나는 행태를 반복해왔고, 이제는 사모펀드라는 우회로를 통해 더욱 교묘하게 부동산·금융 등 우리 알짜 기업들을 잠식하고 있다"며 "국가 기간 산업과 경제의 심장부를 노린 차이나머니의 저인망식 침투에 휘둘리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일부 악성 사모펀드가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며 자신들의 배만 불려온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며 "관련 법 개정을 통해 기술 보호를 넘어 적대적 M&A와 우회 자본 침투로부터 우리 경제를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