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무대 뒤의 예술가들

입력 2025-12-07 13: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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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무대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연주자가 아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만든다. 무대에서 연주자가 받는 박수는 언제나 밝고 뜨겁다. 그러나 공연이 끝날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무대 뒤의 사람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관객이 보지 못한 곳에서 묵묵히 하루의 공연을 완성해 주는 이들. 이름은 잘 기억되지 않지만 공연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예술가들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무대 감독님이다. 공연 며칠 전부터 그는 무대 사용 계획을 묻고, 조명 위치와 악기 배치, 연주자의 동선을 꼼꼼히 확인한다. 단순한 체크가 아니라 실제 연주 장면을 상상하며 필요한 빛과 움직임까지 미리 설계한다. 당일에는 누구보다 먼저 홀에 도착해 조명을 맞추고 바닥을 정리하며, 연주자가 원하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한 환경을 완성한다. 연주자가 편안히 숨을 고르고 무대로 나설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보이지 않는 준비 덕분이다.

음향팀의 하루는 그보다 더 길다. 관객이 떠난 뒤에도 그들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녹음 파일을 정리하고, 며칠에 걸쳐 편집·노이즈 제거·음량 균형 조정 등 후속 작업을 이어간다. 이 작업 덕분에 음악은 순간을 넘어 기록이 되고, 다시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 무대에서는 한 번도 주목받지 않지만, 공연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예술가들이다.

공연기획팀도 마찬가지다. 공연은 어느 날 갑자기 무대에 올라오는 것이 아니며, 수개월 전부터 기획자들의 고민과 조율 속에서 구조를 갖춘다. 프로그램 선정, 예산 배분, 연주자 섭외, 스태프 구성, 홍보 일정까지 공연의 방향은 이들의 손에서 결정된다.

나는 이 과정을 볼 때마다 늘 생각한다. 이들은 단순한 행정인력이 아니라 공연의 메시지를 설계하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가라고. 기획이 없다면 예술은 관객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조명·음향·무대 스태프 등 이름 없는 기술자들도 공연을 완성시키는 존재들이다. 조명팀은 활의 각도와 손끝의 떨림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찾아내고, 음향 기술자는 객석 전체의 울림을 계산한다. 무대 스태프들은 악기 이동부터 동선 관리까지 공연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움직임 하나까지 조심스러워한다. 공연의 자연스러운 호흡 뒤에는 이들의 정확하고 사려 깊은 손길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대에 서는 사람만이 예술가일까?" 답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조명을 설계하는 사람도, 무대를 지켜주는 기술자도, 공연의 방향을 만드는 기획자도, 하루 종일 공연을 준비하는 무대 감독님도 모두 예술가다. 공연은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수많은 손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완성하는 공동 작업이기 때문이다.

지역 예술의 가치는 결국 이 '보이지 않는 예술가들'에게서 나온다. 작은 공연장일수록, 예산이 부족할수록 이들의 책임감과 자존심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름은 조용히 남지만 예술을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는 누구보다 확실한 이들이다. 이 글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연주할 수 있었고, 관객은 감동할 수 있었다고. 무대 위의 박수는 연주자에게 향하지만, 그 박수의 절반은 언제나 당신들의 몫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