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초대석-이정훈] 고개 돌린 대통령, 고개 숙인 대통령

입력 2025-12-08 07: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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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이정훈TV 대표

진실은 사건을 순차적으로 풀어가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23분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국회가 계엄 해제를 결의하자 다음날 새벽 4시 24분 계엄을 해제했다.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개망신'을 당한 것이다.

그 1년 뒤의 오전 9시, 이재명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출입 기자를 놓고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하겠다. 진정한 국민주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민 여러분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겠다"며 '빛의 혁명 1주년, 대통령 대국민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인 대상 국제범죄 보도가 잇따를 때 "한국인을 건들면 패가망신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했던 '국민주권정부'의 수장다운 패기를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아주 짧은 질의응답만 하고 전용차로 청와대 영빈관으로 이동해 10시부터 '새롭게 선 민주주의, 그 1년'이란 제목의 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성명 발표처가 아닌 곳에서 다른 기자들과 긴(1시간 20여 분) 기자회견을 하는 '초유'의 일을 만든 것이다. 이는 국내 기자로부터는 힘든 질문이 나올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수 있다. 외신 회견엔 통역이 붙으니 할랑할 수 있다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NK뉴스는 2010년 워싱턴DC에서 만들어진 북한 전문 독립 언론사다. 서울에 특파원을 두고 있지만 설립자 겸 대표인 채드 오캐럴이 많은 것을 하는 작은 매체다. 첫 줄에 앉아 있다 두 번째 질문자로 지명되는 행운을 잡은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북한은 미국·일본 국민은 석방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교화노동형에 처한 후 계속 잡아놓고 있다"며 대책을 물었다.

통역이 끝나자 이 대통령은 고개를 '획' 돌려 "처음 듣는 소린데, 한국 국민이 잡혀있다는 게 맞아요? 안보실장이 말해 보세요"라고 했다. 위성락 안보실장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자, 그는 "언제 잡혀있다는 건지, 내가 아는 정보가 없어서…"라고 했다. 이를 알아들은 오캐럴이 즉각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스파이 혐의로 잡은 한국인에 대한 보도를 했었다. 이에 대해 박근혜·윤석열 정부는 성명을 냈으나 문재인 정부는 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말이 통역될 때 이 대통령은 불편한 듯 "예, 예"하며 통역을 끊는 듯한 간투사를 발하더니 "오래된 일이라 정보가 부족했다. 더 알아보고 판단하겠다"고 한 후, "왜 남성만 질문하느냐"며 여성 기자를 다음 질문자로 지명했다. 그리고 용산 대통령실로 돌아와 12시로 예정된 5부 요인 오찬을 했다.

오찬장에선 국내 기자들이 들어간 상태에서 모두 발언이 있었는데, '조요토미 히대요시'란 조롱을 받았던 조희대 대법원장이 여당의 사법개혁은 헌법에 맞게 신중히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것도 언론에 보도됐다. 이 대통령은 연속으로 정타를 맞은 것.

경호처는 대통령이 야간에 야외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 그러함에도 대통령실은 '담대'함을 좋아하는 이 대통령을 위해서인지, 이날 저녁 7시 국회 앞에서 열기로 한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에 이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예고했었다. 하지만 오찬 후 경호상의 이유로 불참한다고 밝혔다. 빛의 혁명 대행진의 빛이 바래게 한 것이다.

오캐럴 기자의 지적에 간접적으로 고개를 숙인 것은 다음날이었다. 대통령실은 서면으로 남북대화 재개 노력을 통해 북한에 억류된 9명의 국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여당은 "국민 국민"을 외치며 담대함을 강조하던 통수권자가 미국 작은 매체 기자의 질문에 밀려 고개를 돌려야 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5일부터 조 대법원장을 콕 짚어 다시 공격에 나섰다. 정청래 대표가 대통령 면전에서 뻔뻔하게 사법개혁 반대를 외쳤다며 연내 사법개혁 완료와 사법부도 수사할 수 있는 종합특검 설치를 외친 것이다. 여당의 사법개혁 안엔 위헌 소지가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법사위에서 이 개혁안을 통과시킨 민주당의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이를 의식한 듯, "(위헌 시비를 막기 위해) 헙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는데, 이 개정안에도 위헌 요소가 많다.

민주당은 위헌으로 위헌을 덮으려 한 것인데, 이러한 담대함이 고개를 돌려야 하는 '당황'과 서면으로라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망신'이 되는 날이 올 수 있다. 윤석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