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용산국제업무지구 기공식이 열렸다. 2007년 사업 추진 이래 18년을 끌어온 사업이다. 하드웨어는 확정됐다. 진짜 질문은 이제부터다. 그 화려한 마천루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건물을 짓는 건 자본이지만 도시를 살리는 건 인재다. 용산이 벤치마킹해야 할 모델은 뉴욕 '코넬 테크(Cornell Tech)'와 싱가포르 '원노스(One-North)'다. 두 곳 모두 사실상 황무지에 가까웠던 땅에 세계적인 혁신 생태계를 이식한 사례다. 특히 뉴욕의 선택은 용산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뉴욕시는 금융 위기 직후인 2011년 맨해튼 옆 루즈벨트 아일랜드 시 소유 부지 약 5만㎡를 대학 캠퍼스 유치에 내거는 승부수를 던졌다. 토지 무상임대와 1억 달러 지원이라는 파격 조건을 붙이고 전 세계 유수 대학을 상대로 공개 경쟁을 연 것이었다. 그 결과 스탠퍼드, 컬럼비아 등과의 경쟁 끝에 코넬대와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의 연합 캠퍼스가 선정됐다. 맨해튼 바로 옆에 최첨단 산학협력 캠퍼스가 들어서자 구글,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이 뉴욕으로 몰려왔다.
싱가포르 원노스는 규제 혁파의 효과를 보여준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영 개발사 JTC를 통해 약 200만㎡ 부지를 개발하면서 이 일대를 과감한 규제 프리존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업무용 빌딩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인근 싱가포르국립대와 과학기술청 산하 연구소를 긴밀히 연계해 학문과 산업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 결과 원노스는 아시아 바이오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용산은 이 두 사례에 뒤지지 않는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 공공이 소유하고 있어서 뉴욕처럼 토지 장기무상임대라는 전략적 '베팅'을 시도할 수 있는 구조다. 정부는 이 일대를 도시혁신구역인 '화이트존'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용도와 밀도 규제를 과감히 풀어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 규제 특례를 부여한 셈이다.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과 연구소를 유치할 제도적 틀은 이미 마련돼 있다.
물론 이런 구상이 실현되려면 글로벌 인재가 가족과 함께 정착할 수 있는 정주 여건이 필수다. 현재 계획에도 주거시설 등이 포함돼 있지만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녀 교육을 위한 학교, 의료 인프라, 행정 서비스에서 영어가 실질적으로 통용되는 '글로벌 빌리지'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의 경쟁 도시는 이미 이런 환경을 기본값으로 제공하고 있다. 용산은 서울에서 가장 많은 50여 곳의 대사관이 자리한 자치구다. 자연과 보행중심 개발계획은 기후변화, 지속가능도시 등을 다루는 국제기구를 유치할 수 있는 명분으로 충분하다. 서울의 정중앙이라는 용산의 상징성 역시 이들에게 매력적인 카드다. 이미 국제도시의 초석은 깔려 있다.
이제 첫 삽을 떴다. 흙을 퍼내는 순간 우리는 그 땅에 어떤 씨앗을 심을지 결정한다. 눈앞의 표를 의식해 아파트를 심는다면 그저 그런 또 하나의 베드타운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대학과 국제기구를 심는다면 용산은 대한민국을 앞으로 100년간 먹여 살릴 엔진이 된다. 인재가 없으면 기업도 없고 기업이 없으면 국제업무지구도 없다.
조상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정책보좌관 / 법률사무소 상현 대표변호사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