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과 협업한 누비이불·단청 프로젝트 등 선보여
"흥미로운 한국 속담이나 이야기, 작품의 시작"
12월 12일까지 갤러리 분도
"이불은 마치 현실에서 꿈으로 들어가는 문 같잖아요. 그 이불 문양 안에 공동체 의식이 담긴 속담을 기하학적 모양 안에 숨겨놓으면, 자는 이의 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런 재밌는 생각들을 작품으로 나타냈죠."
'2025 박동준상' 미술부문 수상자인 이슬기 작가의 수상 기념 전시가 갤러리 분도에서 열리고 있다.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곧바로 대구로 내려와 중학교까지 다녔고, 다시 서울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파리로 건너가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간 파리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덴마크, 일본, 포르투갈 등에서 개인·단체전을 가졌고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동시대 주목 받는 시각 예술가로 꼽히고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불 프로젝트는 누비 이불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그가 자란 '섬유도시' 대구와도 연관이 있다. "어딜 가도 거기서 있었던 이야기, 역사, 특산물 만드는 방법 등을 알아보는 것이 재밌다"는 게 그의 얘기다.
2002년부터 초대전시로 인해 한국을 다녀갈 일이 많아, 프랑스 친구들에게 찬란한 색의 전통 누비 이불을 선물해주고자 찾아다녔으나 유행이 이미 지난 뒤였다. 직접 누비이불을 만들자고 결심해 통영의 조성연 누비 장인을 찾아간 것이 작품의 시작이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불 문양에는 상징적인 의미들이 있다고 해요. 모로코의 베르베르족, 이마지겐족이 짜는 태피스트리 카펫에도 상형문자와 비슷한, 의미를 담은 문양이 들어있죠. 한국 누비이불에도 그런 얘기를 담아보고 싶었어요."
그의 작품은 누비장인이 진주산 명주에 한줄씩 촘촘하게 박음질한 결 안에서 작가 특유의 회화적 조형미가 두드러진다. 그는 '미주알고주알', '남가일몽' 등 흥미롭게 느낀 사자성어나 속담을 상징적인 기호로 바꿔 이불 위에 나타낸다. 예를 들어 '미주알고주알'은 항문 부분을 이르는 '미주알'까지 훑어보듯, 아주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뜻. 전시장에서는 엉덩이 모양의 작품을 찾아보면 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유쾌하고 재밌다. 그도 역시 "문자의 어원을 따라가다보면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애매모호한 영역을 발견하는 것이 흥미롭다"며 "관람객들이 내 작품을 보며 상상력을 발휘하고, 서로 그것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재밌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살았던 날이 더 많은데도, 그의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전시장 입구 벽면에는 전통 문살을 연상케하는 격자무늬가 그려졌다.
일정한 두께로 그어진 선이 테이프를 붙인 것인지, 혹은 테이핑한 뒤 물감으로 그린 것인지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작가와 협업한 김수현 단청장 팀의 장인들이 단청 물감으로 단 한 번에 그어낸 선들이다. 이 작품 역시 작가가 전통 문살에 대해 찾아보다가 생각해낸 것.
작가는 "문살 문양마다 이름이 있고, 한국에서는 문살만 봐도 그 방 안의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았다고 하는 얘기가 참 재밌었다"며 "이 작품을 통해 공간을 색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그는 장인과의 협업을 통해 현 시대에서 전통 문화를 재해석하고, 새롭게 펼쳐보인다.
이외에도 전시장에는 2023년 말 그가 갤러리현대에서 두번째 개인전을 열었을 때, 대구 집 근처 국립대구박물관을 찾았다가 본 '대안문' 현판에서 착안한 '현판프로젝트' 시리즈가 함께 걸렸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는 영남대 미술대학장을 지낸 동양화가 이정 교수이며, 어머니는 김채숙 서양화가다. 전시장에서는 그가 "집에서 몰래 가져왔다"는, '미술 가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전시는 12월 12일까지. 매주 일요일, 공휴일 휴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