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해변서도 의심 물질 발견…동남아 조직 수법과 외형 유사
거래 중에 단속 피하려 '던지기'…해류 타고 상륙, 즉시 신고 당부
제주도 바닷가에서 처음 발견된 정체불명의 '중국산 찻봉지' 마약이 경북 포항을 거쳐 영덕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기이한 현상은 발견 장소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는 모양새다. 해경은 국제마약범죄조직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제주→포항→영덕… 90만명 투약분 '케타민' 공포
최근 경북 동해안 지역에서 발견되는 마약 의심 물체들은 이동 경로가 뚜렷하다. 지난 9월 제주도 남쪽에서 시작해 10월에는 포항, 최근엔 영덕 해안가까지 올라왔다.
해양경찰은 지난 24일 오전 8시 24분쯤 영덕군 병곡면 백석해변 인근에서 '茶'(차) 글씨가 인쇄된 녹색 포장지로 감싸진 백색 물질을 발견했다. 앞서 지난 7일 포항시 북구 청하면 방어리 해안에서 중국산 우롱차 봉지에 담긴 마약 추정 물체가 발견됐다.
수사당국 등에 따르면 영덕에서 발견된 의심 물체를 제외하고, 앞서 제주와 포항에서 수거된 내용물은 모두 마약류인 케타민으로 확인됐다. 케타민은 의료용 마취제로 개발됐으나 강력한 환각 작용 때문에 마약류로 엄격하게 관리되는 약물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양은 총 27㎏에 달한다. 케타민 1회 투약량이 통상 0.03g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9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나라 주변을 흐르는 해류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필리핀 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바닷물인 쿠로시오 해류와 여기서 갈라져 나온 대마 난류가 제주도를 거쳐 동해안을 따라 위쪽으로 흐르는데, 이 물체들이 그 흐름을 탄 것으로 해경은 보고 있다.
바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바다 표면에 떠 있는 물체는 해류와 바람의 방향이 다를 경우 이동 속도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특히 이번에 마약이 발견된 포항의 임곡, 청진, 방어리 같은 곳들은 평소에도 파도가 심하게 치거나 바람이 불면 외국에서 떠내려온 해양 쓰레기가 많이 쌓이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골든 트라이앵글의 흔적?… 바다에 '던지기' 유력
발견된 물건의 겉모습을 보면 국제 마약 범죄 조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마약들은 대부분 녹색이나 노란색 중국산 차(茶) 포장지에 진공 상태로 담겨 있다. 해경은 이 형태가 과거 대만이나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된 마약 사건과 비슷하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이른바 태국, 미얀마, 라오스 국경 지대인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의 마약 조직이 주로 이런 포장 방식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등지에서 수백㎏씩 발견된 마약이 이번에 발견된 것과 똑같은 포장지였던 것으로 해경은 파악했다.
수사당국은 대만이나 중국 쪽 바다에서 마약을 거래하던 배들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바다에 짐을 버리는 '던지기' 수법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와 함께 해상에서 물건을 주고받는 작전이 실패하면서 급하게 버리고 도망간 물건들이 해류를 타고 우리나라까지 흘러들어왔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국내에 팔려고 일부러 들여왔다기보다는 해외에서 떠밀려 들어온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내로 유입되려던 정황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호기심에라도 만지면 위험…즉시 신고해야
해경은 이번에 발견된 대량의 마약이 국내 클럽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팔기 위해 들여온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베트남 등 동남아 외국인들 사이에서 수요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번 건은 우리나라를 겨냥한 범죄라기보다는 해류를 타고 우연히 들어온 '불청객'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해경은 앞으로도 비슷한 물건이 해안가로 떠밀려올 수 있다고 보고 수색을 계속하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바닷가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찻잎 포장지나 테이프로 꽁꽁 감긴 벽돌 모양의 물건을 보면 절대 손대지 말고 바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