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김태진] 낭만적 공존이 간과한 야생의 법칙

입력 2025-12-0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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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도심 습격으로 몸살 앓는 일본
낭만 치사량에 닿은 멸종동물 복원
정치적 올바름이 돼버린 친환경 구호

국립공원공단은
국립공원공단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복원프로젝트'를 소개하며 반달가슴곰의 생김새 특징을 알려주고 있다. 국립공원공단 제공
김태진 국제부 차장
김태진 국제부 차장

야생의 세계는 여러 욕구들이 충돌하는 곳이다. 내 배를 불리려면 먹이의 약한 상태를 노려야 한다. 예컨대 갓 태어난 새끼, 갓 새끼를 낳은 암컷, 노쇠해 움직이기 힘든 성체를 주시한다. 약자를 긍휼히 여기는 인간적 감정을 투시해선 곤란하다. 수컷 한 마리가 암컷 여러 마리를 차지하는 것도 당연하다. 시내 공원에서 무리 지어 있는 비둘기를 살펴보라.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은 노래 가사일 뿐이다.

지난달 일본 외신에 자주 소개됐던 기사는 곰의 습격이었다. 아키타, 이와테, 후쿠시마 등 산악지대와 가까운 곳이면 어김없었다. 먹이를 구하러 도심까지 내려오는 건 물론이요, 사람을 먹이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증거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홋카이도의 중심인 삿포로 도심에서도 곰이 어슬렁대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쯤 되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곰들이 인간의 영역을 존중해 도심까지 나가서는 안 된다고 정보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2004년 10월 환경부는 반달가슴곰 여섯 마리를 지리산에 풀어 놨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 복원 프로젝트'다. 20년이 지나면서 반달가슴곰은 90마리 정도가 있다고 추정한다. 덕유산, 가야산 등으로 서식지를 넓힌 것 같다는 증언도 있다. 인간은 곰보다 약하니 맞짱을 뜨려 하지 말라는 조언이 나온다. 멀리 있는 때는 조용히 자리를 피하고, 가까이 있으면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뒷걸음으로 벗어나라고 한다.

곰이 겨울잠을 자는 시기가 됐으니 배려심도 요구한다. 산에 올라 메아리를 끌어오는 '야호'를 외치지 말아 달라는 당부다. 자연과 공존을 염원하는 마음이라지만 낭만적 공생 방식의 강요로 느껴진다는 의견도 비등하다. 곰을 살뜰히 살피고 돌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생물 개체 간 차이를 초월한 공감력과 윤리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 같다는 비판도 무리가 아니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 복원 프로젝트'로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선한 의도'였으리라 짐작한다. 2015년에는 늑대, 표범 등도 복원 대상에 넣는 걸 검토했다고 한다. 점점 과감해질 것 같다는 예상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사람을 공격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는 하나 괜찮은 공존 방식으로 볼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야생성을 모른다면 무지이고, 무시한다면 이상적 신념이다.

다행히 인간이 신체적 피해를 당한 사례가 전해지진 않았다. 사람을 보면 반달곰이 먹이를 달라고 재롱을 떤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으나 야생의 생리를 망각한 것이다. 일본 환경성이 발표한 곰 피해 사상자 수 집계를 보자.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사상자는 196명으로 10월에만 88명이 피해를 입었고 7명이 사망했다. 반달가슴곰으로 인한 피해가 190명으로 압도적이었다.

일본 정부는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배경으로 개체 수 증가와 도토리 흉작을 지목했다. 먹이가 부족해진 곰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인명 피해가 속출하자 일본 정부도 사냥 면허 보유자를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대책을 추진했다. 전직 경찰관·자위관에게 사냥 면허 취득을 권장했다. 결국 사살(射殺)이다.

선한 의도가 결과마저 선하진 않다.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게 태반이다. 언제부터인지 친환경 구호는 정치적 올바름과 연결됐다. 외려 사람의 손을 덜 탈수록, DMZ의 자연 회복을 보라며, 반달가슴곰이 번성하면서 인간의 발길이 줄어 자연 훼손 가능성이 줄었다며 정신 승리의 길로 가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제발 그러지 않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