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인류가 우주로 고개를 돌린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나 정복욕 때문이 아니다. 병충해와 거대한 모래바람이 지상의 모든 작물을 집어삼키고 지구가 더 이상 인류에게 충분한 식량조차 허락하지 않는 거부의 신호를 보냈을 때, 선택의 여지가 사라진 인류는 생존을 위해 등 떠밀리듯 지구를 버렸다. 영화 속 절망은 최근 기후학계가 보고한 '폭염형 급성(急性) 가뭄'과 흡사하다.
가뭄은 더 이상 천천히 오지 않는다. 폭염이 닥치자마자 가뭄이 덮친다. 예보나 준비할 틈도 없이 토양이 마르고 농작물이 타들어 간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이런 '폭염형 급성 가뭄' 발생 빈도가 2000년 이후 무려 8배 급증했다. 지난해 강릉의 폭염과 가뭄은 바로 이 같은 복합 재해의 전형(典型)이었다. 흙먼지 폭풍이 휘몰아치는 삭막한 지구가 영화 소재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 분석에 따르면, 2015년 이후 10년간 지구온난화 추정 속도는 약 0.35℃로 나타났다. 1975~2015년 10년당 평균 상승 속도(약 0.2도)보다 훨씬 빠르며, 1880년 관측 이후 최고치다. 2030년 이전에 파리기후협정의 기온 상승 억제 목표인 1.5도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온난화 파국을 막기 위한 최후 저지선이자 임계점(臨界點)인데, 과학자들은 현재를 임계점 초입으로 판단한다. 임계점이 무너질 경우 해수면 상승과 기상 이변은 인간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 기후 변화는 세계 식량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주요 곡물 생산지 대부분이 기후 위험권에 들어섰다. 앞으로 얼마나 심각한 식량 위기가 닥칠지 가늠조차 어렵다.
과학기술이 답을 찾아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은 버려야 한다. 인공지능(AI)의 확산은 폭발적인 전력 수요와 탄소 배출을 의미할 수 있다. 광활한 우주를 가로질러 새 행성을 찾아내는 것은 스크린에서나 가능하다. 대체 가능한 '플랜 B' 행성 따위는 없다. 자국 이익을 위해 전쟁도 서슴지 않는 시대에 탄소배출량 감소 목표는 동화 속 해피 엔딩처럼 들린다. 기후변화를 음모론으로 치부(置簿)하는 세력들도 기승을 부린다. 인류 생존을 담보할 유일한 탈출구가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