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등과 좌담회… "왜 지금 '인문가치'인가?"

입력 2025-11-06 17:20:39 수정 2025-11-06 18: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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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이희범 한국정신문화재단 이사장, 권기창 안동시장, 전헌 전 성균관대 교수 참석
뉴스 캐비넷 이동재 기자가 진행… 매일신문TV로 볼 수 있어

매일신문과 매일신문TV에서 추진한 인문가치와 관련한 좌담회에서 매일신문TV 이동재 기자와 권기창 안동시장(왼쪽부터),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이희범 정신문화재단 이사장, 전헌 전 성균관대 교수가 패널로 참석해 이야기 하고 있다. 엄재진 기자
매일신문과 매일신문TV에서 추진한 인문가치와 관련한 좌담회에서 매일신문TV 이동재 기자와 권기창 안동시장(왼쪽부터),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이희범 정신문화재단 이사장, 전헌 전 성균관대 교수가 패널로 참석해 이야기 하고 있다. 엄재진 기자

분열과 불균형, 고립과 저신뢰가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된 지금, 경북 안동에서는 다시 '사람'과 '인문가치'를 꺼내 들었다. 매일신문과 매일신문TV는 6일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등을 모시고 '왜 지금 인문가치인가', '우리는 어떻게 함께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 특별 좌담회를 개최했다.

진행은 매일신문TV 뉴스 캐비넷을 맡고 있는 이동재 기자가 맡았고, 패널로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이희범 한국정신문화재단 이사장, 권기창 안동시장, 전헌 전 성균관대 교수가 참여했다. 21세기 인문가치포럼, 세계 인문학 포럼, 세계 인문도시 네트워크 총회가 잇따른 '인문주간'의 한가운데서 좌담은 ▷시대 진단(분열의 구조) ▷실천(공감·연결의 제도화) ▷미래 약속(한국의 '두 번째 기적') 세 막으로 이어졌다.

-오늘 좌담의 취지와 '왜 지금 인문가치인가'를 먼저 짚어주시겠습니까?
▶이희범 한국정신문화재단 이사장(이하 이희범)=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예의·도덕·인문가치는 황폐해졌습니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12년째 포럼을 열며 사람과 공동체의 균형을 다시 세우려 합니다. 성장의 속도 만으로는 행복에 닿지 못합니다.

- 안동이 '세계 인문도시' 교류의 중심지로 주목받는 이유와 도시 비전은?
▶권기창 안동시장(이하 권기창)=선비정신을 바탕으로 인문가치를 생활로 실천해온 도시입니다. 22개국 54개 도시가 네트워크에 참여 중이고, 차별과 경계 없는 '함께의 도시'를 지향합니다. 지속가능성의 기초는 경제보다 사람 중심 가치입니다.

-총재님의 인문적 시선은 어디에서 비롯됐습니까?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이하 김용)=철학자였던 외삼촌과 사상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1980년대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다니던 시절 처음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버드에서 의학과 의료인류학을 함께 공부하며 1988년대 쯤에 '빈곤층을 우선으로 돌본다'는 약속을 세웠고, 그 원칙을 이후 40년 가까이 실천해 왔습니다. 제 리더십의 출발점은 '인간과 관계의 본질을 묻는 질문'이었고, 그 질문은 가족과의 대화 속에서, 또 한국과 세계의 현장에서 계속 다져졌습니다.

- '분열의 시대'라는 진단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김용=오늘의 분열은 기술 환경과 맞물려 더 심화됐습니다. SNS 알고리즘은 클릭에 따라 전혀 다른 정보 세계를 보여주고,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서로 '다른 현실'을 살게 만듭니다.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와 한국의 상황이 놀랄 만큼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합니다. 저는 이를 '강력해진 분열의 도구'로 보며, 특히 '토착주의적(nativist) 정서'가 증폭되는 점을 우려합니다. 사회 수준을 재는 기준도 GDP(국내총생산)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어디까지 책임지는가로 옮겨가야 합니다.

- 오늘 인류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불균형은 무엇입니까?
▶김용=첫째, 의학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수십억 명이 기본 보건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세계은행에 있을 때 그 간극을 줄이려 애썼지만, 선진국의 대외 지원이 점차 위축되는 흐름도 보였습니다. 둘째, 같은 언어·동네 안에서도 SNS가 불안과 우울을 키우며 신뢰를 붕괴시킵니다. 청년 세대에서 그 영향이 두드러진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영역에는 공적 개입과 사회적 보호 장치가 필요합니다.

-현대사회의 위기를 '마음의 균형 상실'로 보신 이유는?
▶전헌 전 성균관대 교수(이하 전헌)=몸은 멀쩡해도 마음이 자신을 잃는 상태. 그것이 균형 상실입니다. 분노를 언어로 바꾸고 감정을 성찰하는 힘이 인문이며, 사회를 지탱하는 첫걸음입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보이지 않는 단절'과 과제는?
▶권기창=휴대폰이 '하루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며 이웃의 얼굴을 모르는 시대가 됐습니다. 행정은 문제를 '처리'하지만 시민은 '해결'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감과 배려의 생활 실천을 회복해야 합니다.

-공감과 연결의 힘은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만듭니까?
▶김용=인류학 수업을 가르칠 때 '인류는 어떻게 거대한 위협 속에서 살아남았는가?'를 묻곤 했습니다. 증거들은 협동과 공감, 공동체 돌봄이 생존의 열쇠였음을 시사합니다. 화석에서도 장애를 지닌 이가 공동체의 보살핌으로 장수한 흔적이 발견됩니다. 저는 공감을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설계 가능한 공공자산'으로 봅니다. 가난한 동네를 다닐 때 아무것도 없는 이가 더 굶주린 이에게 음식을 나누는 장면을 자주 보았습니다. 인간의 진보 가능성을 믿는 근거입니다.

-교육과 의료 등 생활 영역에서 '공감의 제도화'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김용=병원과 학교의 성과를 숫자 지표만이 아니라 '신뢰·만족·재참여'로 함께 측정해야 합니다. 환자의 손을 잡아주는 행위처럼 돌봄의 실천을 정식 성과로 인정하고, 현장 종사자의 정서적 노동을 보상 체계에 반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공감이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조직의 품질을 높이는 구조적 장치가 됩니다.

-공감·자기 이해가 왜 핵심 인문 덕목입니까?
▶전헌=감정은 타인의 상태를 확인하는 가장 빠른 경로입니다. 내 감정을 듣고 말로 바꾸는 훈련이 대화의 출발이며 시민 역량의 기초입니다.

-성장 중심 시대에 '인문적 리더십'의 의미는?
▶이희범=기술·소득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행복과 신뢰는 뒤처졌습니다. 인문은 실행의 언어가 돼야 하며 교육·기업·도시를 잇는 행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안동이 말하는 '균형과 조화'는 정책에서 어떻게 구현됩니까?
▶권기창=성과 지표를 예산·시설 중심에서 '공동체 신뢰'로 바꾸겠습니다. 시민 행복 체감도, 갈등해결 만족도, 재참여율 같은 지표를 도입하고 마을 단위 관계회복 프로그램을 확장합니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한국의 경험에서 오늘 적용할 실마리는?
▶김용=에티오피아 총리와의 대화에서 새마을운동 자료를 내각에 읽히게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최초의 나라이고, 2세대 반 만에 산업화를 이룬 드문 사례입니다. 그래서 세계는 한국을 '참고 가능한 규모와 속도의 모델'로 봅니다. 이제 한국이 제공할 다음 자산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신뢰 회복의 사회적 설계도'여야 합니다.

-'두 번째 기적'을 위한 우선 과제는 무엇입니까?
▶김용=한국은 자살률이 매우 높고, OECD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을 겪고 있으며, 2023년 출생률은 인류 역사상 최저였습니다. 여러 국제 조사에서 한국은 물질적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꼽는 유일한 국가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기적'은 이 구조적 문제를 신뢰 회복으로 풀어내는 데 있습니다. 국가·도시·학교 단위의 신뢰 지표를 만들고, 자살률을 낮추고 출생률을 높인 해외 성공 사례를 체계적으로 수집·검증해 적용하는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답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데이터를 바탕으로 함께 모색해야 합니다.

-행정 최전선에서 체감하는 '행동의 언어'는 무엇입니까?
▶권기창=작은 갈등을 예방·중재하는 마을 단위 실험을 지속하고, 결과를 지표로 공개하겠습니다. 도시는 시설이 아니라 '관계'로 굴러갑니다.

-국가가 추구해야 할 성장의 방향 전환은?
▶이희범=이제는 'GNP(Gross National Product·국민총생산)'에서 'GNH(Gross National Happiness·국민총행복)'로 물질 성장과 함께 공동체 신뢰·대화·도덕을 국가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인문도시 네트워크와 포럼의 '글로벌 확산' 계획은?
▶이희범=안동발 모델을 국제도시들과 연계하고, 영문 브리프·연례 보고서로 공유하겠습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확산시키겠습니다.

-오늘의 대화를 마치며 시민에게 당부하실 말씀은?

▶이희범=목표는 분명합니다. 조화·공동체·배려의 회복입니다. 말이 아니라 공동 행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권기창=인문가치는 국경이 없습니다. 지도자부터 실천해 시민에게 파급시키겠습니다.

▶전헌=여러분의 꾸준한 노력이 변화를 만듭니다. '한국의 알맹이'를 되찾는 길에 함께해 주십시오.

▶김용=오늘 대화에서 큰 희망을 얻었습니다. 전헌 교수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제 사유의 틀을 넓혀 주셨고, 이희범 이사장님은 GNH 같은 가치 전환의 언어를 경제·산업의 현장과 연결하고 계십니다. 권기창 시장님은 도시가 고립과 분열을 넘어 연대로 나아가도록 조직을 묶는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한국이 '연결의 윤리'를 사회의 표준으로 세운다면, 그것이 곧 세계에 건네는 다음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