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책 한 권이 배달됐다. 이용훈 작가의 『오함마백씨행장완판본』(연극과인간)이다. 2023년 국립극단 창작공감 선정작으로 희곡 낭독회를 거쳐, 지난해 제14회 서울미래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책은 잘 받았습니다. 연락처가 없어서요…"작가는 잠시 머뭇거렸다."전화를 안 주셔도 되는데… 괜히."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말투에서 작가의 심성이 느껴졌다. 바나나 빛깔로 뭉개져 형상화된 표지는 오함마를 들고 선 한 남자의 형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묘하게 교차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 책은 한글과 영문 번역을 병기했다. 시집 크기(약 50쪽)에 담긴 내용은 구옥(舊屋)을 철거하는 노가다 잡부, 오함마백씨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베트남 인부 쯔엉과의 철거 현장 기억을 고윤호의 독백 서사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구옥 철거 노동자의 서사는 희곡이면서도 소설적이고, 동화적 묘사가 강했다. 오함마로 때리고 부수는 철거 현장의 소리는 극적 이미지로 강렬히 형상화되며, 무대 위에서 '소리와 이미지의 서사'로 변주될 만큼 드라마틱했다.
작가가 쓴『근무일지』(창비)의 시집 한 권을 주문하고 작품 정보를 찾아봤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5 서울아트마켓(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 이하 PAMS)'의 프로그램으로 공연 중이었다. 희곡을 어떻게 무대화할지 강렬한 궁금증이 밀려왔고, 티켓을 예매한 후 달려가서 보게 된 작품이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이다. 공연에서는 고윤호로 분한 배우 오치운 씨가 연출을 맡아 전작 공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했다. 판소리 표제 같기도 한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은 오함마 인생을 살아온 구옥 철거노동자 잡부인생 백두영 씨의 단편 전기(傳記)소설 독백극을 고윤호의 시선으로, 때로는 1인칭으로,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보는 극이다. 백 씨의 노동 현장의 삶을 다루니 그의 행장(行狀)을 서술한 문장이고, 죽음까지이니'완판본'이 되는 셈이다.
 
                    ◇ 철거현장 노동자로 「근무일지」를 써온 이용훈 작가의 「오함마백씨행장완판본」
『근무일지』 시집을 창비에서 출판한 이용훈 작가는 구옥 철거 노동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니 오함마로 구옥을 철거해온 백씨 행장 기록에 등장하는 고윤호는 작가인 셈이다. 그의 시적 문체는 잡부로 불리는 그의 기록 서사인 것이다. 작가는 새벽 4시면 덜그덕거리는 1톤 트럭에 철거 연장을 실고 바나나를 베어 물고선 구옥 현장 철거에 나선다."나는 허용될 수 있는 물건에 이름표를 달고 핑계를 붙이고 샴푸는 마셔버려서, 면도기는 손목을 그을까 봐, 볼펜은 찌를 수 있다 해서 수건도, 수건은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다가 둥근 나뭇결 조그만 조그만..."(「근무일지」중) 처럼 시인인 철거 노동자의 인생은 매일 악몽 같은 불안감으로 생존일지를 쓰고 버티면서도 그는 "밤낮이 뒤집어지고 배 속이 뒤집어진다 소리 지를 때도 나는 당신의 만화경 속에 머물고 싶어라..."할 정도로 나아질 것 없는 생존일지를 시로 써내려간다. 현장 근무를 서면서 돌아오는 것은, 수북한 자본으로 삶과 인생의 주머니를 채울 수 없는 만화경 같은 현실일 뿐이다. 만화경처럼 느껴지는 세상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사각형의 폐쇄 병동이 되고, 팔각형의 의사와 소지품을 분류하는 병동 보호사는 삼각형으로 그의 생존과 철거 노동 현장의 근무를 통해 마주하는 인간과 삶, 죽음, 소리, 굉음, 대화와 세상은 오함마로 벽면을 내려치고 들려오는 두려움처럼 전진할 수 없는 비현실 같은, 정육면체 안에서 맴도는 인생의 노동 현장이면서도 절망으로 되돌아오는 만화경 같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작가는 그의 만화경 속에서 탈출할 수 없는 인생을 전진한다.
그런 만큼 작가가 다가설 수 없는 만화경 같은 세상을 절박한 생존으로 그의 심성으로 관찰되는 노동 현장의 도구들, 구목, 벽면, 오함마, 콘테이너와 포크레인, 외국인 노동자와 인력 잡부들이 섞인 현장은 때로 오함마로 내려치는 죽음으로, 불안함으로 삶은 언제나 철거 노동 현장의 구옥 벽면이고, 무너져 내리는 대들보의 천장이다. "침 삼켜 참아보기로 했다 퍼런 입술 제멋대로 풀릴 때까지"(시「나는 굶는다」 중)로 버티고, 버티는 철거 노동자의 인생이다. 부러진 육각형으로 맴도는 두려움과 공포, 불안감은 검붉게 뭉개져 죽음으로 향하는 바나나의 형체가 되어가고, 그의 내면과 채워지지 않는 허기의 오장육부가 시로 맞닿아 있다. 그것이 시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으로, 허기진 배를 잡고 철거 연장 도구를 챙겨 만화경 같은 세상을 향해 마른 입술로 침을 삼키며 허기를 채우던 철거 노동자 잡부의 인생은 되돌아 완판본이 될 수 없는 작가 이용훈의 「근무일지」와도 같고, 그의 시어처럼 '내비게이션은 업그레이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근무일지』 시집에 수록된「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은 "바나나가 사라진다고 들었어요. 부르는 노래가 있잖아요. 바나나는 길다고 그래서 기차라고, 이 노래 한 소절로 바나나는 비행기가 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게 된 건가요?(중략) 백두영 씨. 그는 백혈구에 문제가 생겨 내분비계가 엉키는 바람에 영영 돌아오지 못했어요."로 시작되는 시로, 철거 현장 인생을 살아온 백두영 씨의 죽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길다고 해서 붙여진 바나나는 기차의 열차칸 만큼 연결될 수 없는 잡부의 인생이고, 만화경 같은 인생에서 바라보는 '바나나'는 검붉게 흐물해져 죽음으로 향하는 오함마 백씨와 철거 노동자의 삶이다. 작가의 글은 구조화된 문장과 시적인 리듬으로 형상화되기보다는 그의 일기장의 고백 서사처럼 근무 현장은 생생하면서 아프고, 아프면서도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할 정도로 오함마로 내려치는 것이 주특기인 잡부인생의 비극은 유쾌하기까지 하다.
 
                    ◇ 빛, 사운드, 이미지, 오브제로 기록된 한 철거노동자의 행장서사
무대는 오함마백씨가 살아온 철거 현장이자 현장 사무소이다. 공간은 연극의 구조를 스스로 철거한다. 극장의 조명이 철거된 블랙박스 공간은 그 자체로 현장이다. 최대한 오함마백씨와 고윤호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로 시각화된다. 빛바랜 나무 탁자 위, 조명 스탠드 하나가 달려 있고 바닥을 짓누르고 있는 쇠덩이 오함마가 눈에 들어온다. 너저분하게 흩어진 공구들, 라디오, 엉켜 있는 전선들, 커다란 벌건 고무 양동이, 오렌지색 주차금지 표지판, 그 뒤로는 사다리와 정도가 보인다. 상단에서는 전선줄을 타고 길게 늘어진 갓등 스포트라이트가 현장을 비추고 있다. 무대 좌우는 분할되어 고윤호의 기억과 독백 서사가 그림자와 빛, 그로테스크한 소리, 몇 개의 스탠드 조명과 오브제들로 시각화되는 공간이자 현장으로 확장된다. 그런 만큼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은 아르코예술소극장 무대 공간만 확보하고 벽면, 출입문, 천장 그리드 등은 철거 현장으로 노출되고 시각화된다.
극은 작업복을 입은 40대 후반의 고윤호가 낡은 현장 공구 가방을 들고 들어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무 탁자 위에 바나나 서너 개를 올려놓고 "한 송이 바나나가 식탁에 놓여 있습니다. 부엌은 노란색이지요. 건조대에 걸린 작업복을 배낭에 구겨 넣고, 바나나 한 개를 떼어 얼른 주머니에 넣었지요."라는 말로 시작된다. 검붉게 변해가는 바나나는 백씨의 죽음을 은유하면서도, 천장에 깔리고 돌벽에 부딪히며 인생을 건 구옥 철거 노동자의 잡부 인생과 다르지 않다.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은 독백 구조이면서도 프롤로그부터 고윤호가 경험한 기억의 철거 현장 서사로 시작된다. 오함마백씨와의 인연, 슬리퍼를 끌고 현장에 나타나는 베트남 노동자 쯔엉과의 사건, 그 기억 속에 드리운 죽음의 불안감, 백씨의 입원, 오토바이 사고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철거 현장에 뛰어든 고백, 그리고 오함마백씨의 죽음까지를 다루고 있다.
고윤호의 기억 서사는 원작과 달리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의 차이를 두며, 철거 현장과 백씨, 고윤호의 과거, 쯔엉의 이야기를 교차해 포스트드라마 구조로 감각화되어 전달된다.탁자에 달린 스탠드와 의자는 철거 현장으로 달려가는 고윤호의 근무일지가 되고, 구옥 철거를 설명하는 독백에서는 구옥 미니어처를 올려놓고 빛을 투사해 벽면에 투영된 구옥의 윤곽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구옥을 철거하기 위해 오함마로 벽면을 내려치는 소리는 고윤호와 철거 노동자의 내면을 파고들 만큼 그로테스크하다. 마치 다른 노동현장의 인물로 형상화될 정도로 강렬한 언어가 된다. 쯔엉 때문에 철거 과정에서 벌어진 아찔한 순간을 말하는 장면에서는, 뜨엉의 형체가 사라진 듯 RC 자동차 바퀴에 쯔엉을 상징하는 슬리퍼를 달아 무선으로 움직이며 시각화했는데, 이는 철거 현장에서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들의 존재를 형상화한다. 오토바이 사고를 기억하는 장면에서는 빛을 투사해 오토바이의 형체를 그려내고, 그 시간을 기억하며 감정을 봉인한다.
 
                    ◇ 서울아트마켓 팸스(PAMS)에서 발견한 한국 모노드라마의 확장성
오함마백씨와 함께한 철거 현장에서 붕괴되는 시간의 순간, 수묵처럼 허공으로 흩어지는 스모그가 현장이 된다. 오함마로 벽면을 내리칠수록 벽은 부서지고, 갈라지며 쌓이는 먼지더미의 가루들이 스포트라이트를 타고 비처럼 쏟아지는 전경은 매직 같다. 백씨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무대 우측 후면에 세워놓은 판넬 뒤로 그림자처럼 죽음을 형상화한다. 마지막 장면은 백씨의 죽음 이후다. 검붉게 변한 바나나는 축축하게 가라앉고, 잡부로 불리던 오함마백씨의 행장은 완결되는 듯하지만, 카세트테이프에서 들려오는 오함마백씨와 고윤호, 쯔엉의 철거 현장 속 대화와 소음들이 증폭된다. 공간의 울림은 여전히 강렬하다.완판본이 되지 못한 '오함마백씨행장'은 여전히 구옥 철거 현장을 지키는 듯하고, 고윤호의 인생과 불안, 그리고 잡부로 불리던 삶은 결국 오함마로 검붉은 바나나가 되어간다.연출적으로 형식과 무대에서 활용되는 재료들은 비슷할 수 있으나, 이 작품 쓰임새는 다르다. 부재한 인물들이 독백 서사와 오브제들로 언어가 되고, 극은 그렇게 완전체를 이룬다.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은 희곡적이면서도 시적이다. 독백시의 행간을 그림자, 빛, 사운드, 이미지, 오브제, 그리고 배우의 연기로 극적 언어로 형상화하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은 모노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는 수작이다. 부산 출신의 배우 오치운의 연기는 연기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고윤호이면서 동시에 작가 이용훈의 내면이다. 연극평론가로서 꼭 보실 것을 추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5 서울아트마켓'에서 발굴한 것도 이례적이다. 2025 서울아트마켓(팸스, PAMS)에는 5일간 30여 개국 1,900여 명의 공연예술 관계자가 참가했으며, 50여 개 피칭 프로젝트, 80여 개 부스 단체, 1,650여 건의 미팅이 진행됐다. 기간 동안 K-공연예술의 새로운 순환과 협력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켓 기간은 5일 동안 집중되었고,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전막 공연은 11월 9일까지 서울남산국악당·아르코예술극장·대학로 극장 쿼드 등에서 이어지고 있다. 해외공연진출팀을 이끌고 있는 강예나 팀장은 "올해 쇼케이스 라인업은 국내외 관계자들로부터 한국 공연예술의 다양성과 수준을 동시에 보여준 구성이었다"라고 평가한 뒤, "한국 공연예술의 동시대성과 완성도를 보여준 무대였다"라고 말했다. 네이키드 블루스의 <이 세상 말고>는 성북구 팅크(TINC)에서 11월 5일부터 7일까지 공연되며, 극단 코너스톤, 이철희 연출의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는 11월 6일부터 8일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어령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미니인터뷰|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 연출, 배우 오치운
공연이 끝난 뒤 작품의 잔상이 남아 극장 주변을 맴돌았다. 전화를 받고 극장으로 내려가자 오치운 씨는 아르코소극장 철거 현장 근무가 끝난 것처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작은 키에 다부진 얼굴, 공사 현장 작업화와 안전모를 뒤집어쓰고 있었다."작품은 미래연극제보다 지금 작품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어려운 작품이지만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죠." 미니 인터뷰는 구옥 철거 현장에서 이루어진 것 같았다.
─ <오함마백씨행장완판본>의 의미는.
"'오함마'는 건설 현장 인부들이 쓰는 쇠덩이 해머를 말하는 일본식 명칭입니다. 일본어로 '오'는 크다를 의미하고,'함마'는 해머의 일본식 발음인데 건설 현장에서는 일본식 용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습니다.(이용훈 작가의 시집 『근무일지』 중 '당신의 외국어'를 읽어보시면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백씨'는 백두영 아저씨를 지칭합니다. '행장'은 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이고, '완판본'은 조선 말기 전라북도 전주에서 간행된 고대 국문소설의 목판본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하죠. 작가의 시집에 '오함마백씨행장'이라는 시가 있는데, 희곡의 제목은 오함마를 든 백씨의 생전 이야기를 완판본으로 펼쳐 냈다는 의미가 되는 것 같습니다. 희곡 마지막에 백씨의 독백이 전라도 사투리로 되어 있는데, 조사해 보니 전라북도, 그중에서도 전주 쪽이 가장 가까운 말투라고 들었어요. 아마 백두영 씨와 완판본은 그렇게도 연관이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 <오함마백씨행장완판본>은 철거 노동자의 1인 독백극이다. 작가 서사를 모노드라마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용훈 작가의 대본은 담담한 시어로 구성되어 있어요. 아름다운데, 크게 아름답다고 마음으로 외치지는 않습니다. 담담하게 슬픔을 말하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몇 개의 문장으로 미장센을 상상할 수 있지만, 배우의 몇 마디로는 그 시적 표현을 무대화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희곡은 비어 있는 그림 같아서, 뭔가를 넣고 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언어와 톤이 맞지 않으면 공허하게 느껴져서 연출 구상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웃음) 정말 다 어려웠습니다."
─ 연출적으로 무대에서 그려내고자 했던 것은.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은 철거라는 노동, 개인의 일상, 백씨의 비극적 서사가 탄탄하게 얽혀 이야기되는 희곡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한 무명의 노동자의 죽음을 관객들에게 들려주며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연출적으로 이 작품에서 그려내고자 했던 것은 스토리텔링의 무대였습니다.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인물의 세계관 구축에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인물의 세계관으로 보는 빛, 그림자, 공기의 온도, 공간의 느낌, 사운드, 현장, 같이 일하는 동료 등 모든 존재들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어떤 무대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콘셉트를 찾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스토리가 깊어 연출하기가 어려웠고, 연출적 미장센을 가지고 오면 이야기가 상쇄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에 희곡을 처음 읽었을 때 세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빛, 그림자, 오브제'. 콘셉트를 잡기 위해 많은 것을 상상하고 실험했는데, 결국 이 세 가지 콘셉트만 남았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발전시켰습니다."
 
                    ─ 작품은 언어보다는 사운드, 이미지, 오브제로 철거 노동자의 삶을 감각화한다.
"읽기에 너무 훌륭한 희곡인데, 연출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희곡이었습니다. 설득력 있게 관객을 만나야 하는 세 단계가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바나나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런 고윤호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윤호의 세계로 백씨의 죽음과 철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였습니다. 마지막 고윤호의 세계를 구성하는 데는 스태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사운드 디자이너 이현석 감독과 무대 디자이너 황경호 감독이 이러한 콘셉트를 연출적으로 잘 받아주었어요. 좋은 창작자들 덕분에 좋은 무대(공연)이 시각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고윤호의 시선으로 바라본 철거 노동 현장의 이야기 중, 쯔엉과 백두영 씨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과 연출적으로 느껴진 것은.
"처음 희곡을 읽었을 때, 예술 노동자의 이야기라고 착각할 뻔했습니다. (웃음) 그런데 희곡은 내 이야기이고, 후배의 이야기이고, 저를 가르친 선생님의 이야기라고 느꼈습니다. 작가님은 작품에서 쯔엉을 통해 두영 아저씨가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윤호를 다그치던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고, 그 목소리는 마지막 독백을 통해 들렸습니다. 삶의 기록은 서로서로 연결된다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분명히 하고 싶었고, 관객들이 그것을 느낄 수 있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슬리퍼를 신은 쯔엉을 RC 자동차로 표현하고, 구옥 철거 과정을 미니어처와 그림자, 그리고 고윤호의 철거 노동 일지를 손가락과 박카스병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희곡에 작가님이 모형 집과 모형 차, 쯔엉의 슬리퍼를 지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사용하면 소품으로 끝날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고윤호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에 이 존재들이 오브제로서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고 움직이면 좋겠다고 연출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림자도 같은 의미에서 그랬습니다. 첫 출근 장면에서 센서등과 교감하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그림자를 이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빛과 그림자를 선택한 것은 과거 노가다 경험에서, 작업등에 비춰진 노동자의 그림자가 실제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표현 방법으로 고민한 끝에 형상화된 극중 장면입니다. 모든 언어들로 연극 무대는 많은 실험을 해왔고 실패도 많았지만, 살아남은 무대 언어들이 지금 무대에서 관객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연기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은. 극중 인물의 접근 방식은.
"관객에게 구옥의 철거와 백씨의 죽음을 이야기하는데, 저의 호흡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존재들과 교감하는 '저'는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연출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그 인물 세계를 형성하는 과정이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직접 경험을 위해 작년에 철거를 경험했고, 철거촌과 구옥을 쫓아다녔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젊으실 때 현장에서 오래 일을 하셔서, 그때의 노동자들의 모습과 흔적을 많이 따라갔습니다. 연출적 언어를 찾아 나가는 방법이 극중 인물에 접근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손전등을 들고 다니고, 쓰레기들을 차에 싣고 다녔습니다. 고윤호의 세계는, 고윤호가 말하는 세계를 제가 이해하지 못하면 관객들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태도로 인물을 준비했습니다."
 
                    ─ 글로 읽혀지는 이용훈 작가에 대해, 연출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작가님의 작품은 독창적입니다.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도 그렇지만, 세계관 자체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평가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인문학적 표현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예술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오함마백씨행장완판본>의 '바나나'는 문학적인 은유이면서도 사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첫 마디에 반했습니다.연출을 해 보니 읽는 감동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많이 어려웠습니다. 기술적 연출로 덤벼들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 공연 계획은.
"11월 28일, 29일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에서 공연이 있습니다. 그리고 12월에는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쇼케이스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더 많은 공연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습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팸스(PAMS)에 참여한 계기도 그 이유와 같습니다. 공연 콘셉트는 소극장도 좋은 공간이지만, 큰 창고나 노후화된 대안 공간 등에서도 공연하기 좋습니다.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역 유통 지원사업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철거와 구옥, 그리고 많은 백씨와 쯔엉, 윤호가 있는 곳에서 <오함마백씨행장 완판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오함마백씨행장완판본> 평론을 쓰면서 오치운씨는 공연제작과정과 공연대본, 연출노트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작품에 대해 궁금한게 생기면 전화를 걸었고 몇 차례 통화를 했다. 그는 여전히 극중인물 고윤호로 살아가고 있었고, 이용훈 작가의 시적 의미를 연극적으로 풀기위해 여전히 구옥철거현장을 누비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