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종의 이슈 진단] 세계경제의 성장 정체와 권력의 전환

입력 2025-10-30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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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종 라엔경제연구소장·경제학 박사
곽수종 라엔경제연구소장·경제학 박사

서기 1년부터 1820년까지 1인당 세계 소득은 연평균 0.017%에 불과했다. 세계 소득은 한 세기당 2% 미만으로 증가했다. 빈곤이 일상이었기에 권력 변화는 간헐적이었다. 인간 문명의 진화는 주로 제한된 자원을 착취하는 방식이었다. 중국과 인도 제국은 농업 잉여를 간신히 확보했고, 베니스와 오스만 제국은 무역에 세금을 부과했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은을 약탈하고, 합스부르크(Habsburgs)와 부르봉(Bourbons)은 왕실 결혼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몽골의 기병, 오스만·사파비드·무굴 제국의 화약 등 전쟁과 군사의 혁신은 일시적 힘의 균형을 바꾸기도 했지만, 경쟁국은 결국 적응했다. 1898년, 영국이 다른 열강들과 함께 한때 막강했던 청(淸) 제국을 나누어 가질 때, 영국 총리 로드 솔즈베리(Lord Salisbury)는 런던 청중에게 세계가 이제 "살아 있는 국가"와 "죽어 가는 국가"로 나뉘고 있다고 경고했다. '살아 있는 국가'란 산업 시대의 부상하는 강국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변혁적인 기술을 갖추며, 전례 없는 범위와 화력을 지닌 군대를 보유한 나라, 즉 영국을 지칭한 것이다.

반면 '죽어 가는 국가'는 부패로 무력해진 정체된 제국으로, 구식 방식을 고집하며 몰락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던 청 제국을 말한다. 그는 일부 국가의 부상이 다른 국가의 쇠퇴와 충돌하면서 세계를 파국적 분쟁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18세기 말 영국의 산업혁명은 희소성의 제약을 깨고 생산성을 국가 권력의 기초로 삼으면서 사회를 중세에서 근대로 한 세기 내에 도약시켰다. 산업혁명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인구 폭발을 촉발했다. 산업혁명 이전 사회는 인구가 거의 늘지 않아 천년에 한 번 정도만 두 배가 되었지만, 산업화는 이 한계를 깨뜨렸다.

19세기, 세계 인구는 연평균 약 10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기계화된 농업, 위생, 전기, 냉장, 신약 개발은 1770~1950년 세계 평균 기대수명을 60% 이상 높였다. 인구는 한 세대에서 두 세대마다 두 배가 되었다. 독일, 영국, 미국이 선두를 달렸고, 일본과 러시아가 뒤를 따랐다. 중국, 인도, 합스부르크와 오스만 제국은 뒤처졌다.

19세기 들어, 마침내 1인당 소득 성장률은 산업혁명 이전의 30배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한 이익은 소수 국가에 집중되어 권력의 거대한 격차를 만들어 냈다. 영국, 미국, 독일은 1800년 세계 제조업의 10% 미만에 머물렀지만, 1900년에는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1인당 소득은 거의 세 배가 되었다.

반면 중국과 인도의 점유율은 세계 생산의 절반 이상에서 10% 미만으로 떨어졌고, 여전히 농업 중심이었으며, 국가 이익 창출 규모에서는 턱없이 소수의 산업화 국가경제에 밀려났다. 1900년까지 산업 국가의 1인당 소득은 중국과 인도의 8~10배, 러시아 및 합스부르크와 오스만 제국보다 몇 배나 높았다. 소위 '대격차(Great Divergence)'의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처음으로 부, 인구, 군사력이 상호 보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국가들은 꾸준히 성장하는 상승 궤도를 따라 권력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세 가지 요인에 기반했다. 생산성을 극대화한 기술, 노동력과 군대를 팽창시킨 인구 증가, 신속한 정복을 가능케 한 무기 체계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세계는 수세기 만에 처음으로, 더 이상 세계 균형을 뒤엎을 만큼 빠르게 상승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한때 강국을 탄생시켰던 인구 급증, 산업 혁신, 영토 확장은 대부분 끝이 났다.

한때 현대 지정학적 선진 경제와 후진 경제를 정의했던 급속한 경제 및 산업 발전은 정체되기 시작했고, 세계는 어쩌면 늙은 강국들의 폐쇄적이고 극히 고립되기를 원하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경제적 불안은 극단주의를 부추기고 민주주의를 부식시키며, 미국은 폭력적 단독 행동으로 기울고 있다. 과학과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와 창조적 파괴는 끝나가고 있지만, 그 직후 상황이 결코 평화적일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경제, 인구, 군사 혁명은 전 세계를 단일 경쟁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그 경쟁에서 소수의 강대국이 탄생했으며, 각 국가는 몇 가지 특별한 경로를 통해 형성되었다. 첫 번째 경로는 국가 통합이었다. 분열된 지역에서 최초로 산업화한 지역이 나머지를 정복하는 방식이다. 프로이센은 독일을 통합했고, 사츠마와 조슈는 현대 일본을 구축했으며, 피에몬테는 이탈리아 통일을 주도했다. 미국의 산업화된 북부는 원주민을 격파하고 남부의 반란과 노예 제도를 무너뜨리며 서쪽으로 확장했다.

두 번째 경로는 전체주의였다. 이전 제국들은 독재자의 통제 아래 산업화를 단기간에 추진했다. 예로 소련의 요셉 스탈린,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중국의 마오쩌둥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엄청난 인적 비용이 발생했다.

세 번째 경로는 보호국이 되는 것이었다. 중국은 전후 독일과 일본이 미국의 보호 아래 재건하는 것을 보며 1970년대부터 워싱턴과 관계를 맺고 자본과 노하우를 흡수하였으며, 마침내 21세기 독립적 패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G2의 위상까지 거침없는 신분 상승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급속한 성장의 역풍으로 강대국 클럽에 들어가는 문이 막히기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이 자본과 기술을 장악하고 있으며, 글로벌 생산은 모듈화되어 후발국은 조립이나 원자재 수출 같은 낮은 부가가치 역할만 남는다. 외국 원조는 감소하고, 수출 시장은 축소되며 보호무역이 확산되어 과거 서구 선진국이 밟던 사다리는 사라졌다. 역사적 사회적 이동은 급격히 둔화되었다. 1980년대 부유하고 강력했던 국가들은 여전히 강력하며, 가난한 국가는 여전히 가난하다. 1850~1949년 다섯 개의 강국이 새롭게 등장했으나, 이후 75년간 중국만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마지막일 수 있다. 이제 그 문은 닫히고 있다. 생산성은 둔화되고, 인구는 줄며, 정복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날의 기술은 산업혁명만큼 삶을 재편하지 못하고 있다. 운송 속도는 정체되었다. 일부 예측은 AI가 연간 글로벌 산출을 30% 증가시킬 것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연간 1%포인트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본다.

AI가 계속 발전해도, 경제가 새로운 과학과 기술 발전에 맞춰 재편되지 않으면 주요 생산성 향상은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글로벌 성장률은 21세기 초반 4%에서 현재 약 3%로, 선진국은 고작 1%에 불과하다. 노동력이 감소하고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주요국 경제는 향후 25년래 성장률이 최소 1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국가는 그보다 훨씬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를 보충하려면 1950년대와 같은 연간 2~5% 생산성 증가가 필요하거나 근로 시간을 늘려야 하지만, 혁신 둔화와 대규모 은퇴로 현실적이지 않다. 산업화 시기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국가도 세대를 거쳐 회복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인구 감소로 인한 권력 손실은 영구적일 수 있다. 경제성장이나 인구 부활에 의지할 수 없으므로 정복이 마지막 선택지처럼 보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난 250년간 세계 정치의 원동력이었던 강대국의 급속한 상승이 사라지고 있으며, 이제 '살아 있는 국가'와 '죽어 가는 국가'의 전통적 투쟁은 끝나고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다만 아직 그 윤곽이 분명치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