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관세협상 타결, 다행이나 시장 반응은 지켜봐야

입력 2025-10-30 05:00:0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한미 관세협상이 윤곽(輪廓)을 드러냈다. 최대 쟁점인 3천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를 두고, 한국은 외환시장 안정을 이유로 '현금 투자 규모 최소화' 입장을 유지한 반면, 미국은 '대규모 현금 투자'를 요구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여 간극(間隙)이 좁혀지지 않았다. 29일 한미 양국의 합의 내용은 3천500억달러 중 현금 2천억달러, 조선 분야 1천500억달러 투자이며,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달러로 제한했다는 게 가장 핵심이다.

자동차 및 부품 관세는 기존 15%를 유지하며, 의약품·목재 등 품목에는 최혜국 대우가 적용된다. 항공기 부품 일부와 특정 의약품에는 무관세가 적용된다. 조선업 분야 협력안인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산업 부흥 프로그램)'와 관련해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구조로 협의가 이뤄졌고, 금융당국 보증 프로그램도 포함될 예정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환율, 외환 시장 불안과 관련, "200억달러는 외환시장이 불안할 경우 납입시기와 금액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장기에 걸쳐 (납입이)이뤄지고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약된다"고 했다.

관세 불확실성은 일단 해소됐지만 세부 사항을 둘러싼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김 정책실장은 미국 투자 원금 회수(回收)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층적 장치와 상업적 합리성을 강조했다. 특히 양해각서 1조에 상업성 합리성, 즉 심사를 통해 원리금 회수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만 투자하는 내용을 명확히 담았다고 역설했다. 수익 배분 비율이나 원리금 회수 후 수익 분배보다 중요한 것이 투자 사업 선정이라는 의미다.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해 일정 부분 우리 요구를 담아냈지만 이를 결정하는 투자위원장이 미국 상무부장관이며, 우리 측은 협의위원회 역할을 한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일방적 투자 요청 시 추후 협의토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지만 제 목소리를 낼 지는 의문이다. 김 정책실장도 인정했다시피 이익 배분 비율을 숫자로 명시하지 못한 대목도 아쉽다. 실질적 문구를 통해 불리하지 않은 배분 장치를 마련했다는데, 해석 차이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

마지막까지 협상 타결에 영향을 준 최대 요소는 결국 외환 안정성이다. 우리 측의 통화 스와프 언급에 미국이 한동안 무대응으로 일관했으며, 이후 마라톤 협상 과정에서 외환시장이 흔들리면 안된다는 양국의 공감대가 형성돼 연간 200억달러 투자 한도에 대한 합의도 이뤄졌다고 했는데, 과연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 지는 지켜봐야 한다. 물론 앞서 연간 투자 상한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때 외환시장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최대 가용 규모를 150억~200억달러로 상정했지만 환율 안정을 장담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명했다시피 국내 투자가 극도로 부진한 상황에서 200억달러가 미국으로 빠져나간다면 내수와 고용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국익 손해를 감수(甘受)하면서까지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 지을 필요는 없다고 해도 시간이 마냥 우리 편은 아니었다. 양국 고위급 관계자들이 APEC 기간 중 타결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전망을 연이어 내놨지만 "한국과의 무역합의를 매우 곧 마무리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막판 극적 타결에 대한 기대가 커졌고, 이에 부응하듯 협상 타결을 통해 불확실성은 크게 해소됐다. 그러나 섣불리 안심해선 안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APEC CEO 서밋에서 "진정한 성공은 의심하는 자들이 틀렸음을 입증할 수 있는 확신과 용기를 갖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관세를 둘러싼 내외부의 반발과 우려를 의식한 발언인데, 마지막까지 미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