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행적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사실상 지역 정당 전락 국힘
양당 체제의 한 축이지만, 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을 전국 정당이라고 하기는 민망하다.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지역구 국회의원 총 122석 중 국민의힘은 19석(약 15.6%)불과하다. 민주당이 102석으로 약 83.6%를 차지한다. 국민의힘은 대구·경북(TK) 25석 중 25석(100%), 부산·울산·경남(PK) 40석 중 34석(약85%)을 가진 사실상 '영남당'이다. 21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수도권 121석 중 16석(13.2%)에 그쳤고, 민주당이 104석으로 85.9%를 차지했다.
▶상황에 질질 끌려다니는 형국
이런 상황에 계엄사태까지 덮쳤으나 국민의힘에 쇄신 바람은 불지 않는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 관계 있는 사람들을 다 처벌하고, 윤 전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연(緣)을 끊으라고 압박한다. 끊지 못하면 내란당이라고 퍼붓고, 끊으면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의힘 지지층의 외면을 받을 것이니 어느 쪽이든 민주당으로서는 '꽃놀이패'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지방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정치 전문가들이 많다. 국민의힘이 상황에 질질 끌려다니는 가운데 3대 특검(내란특검·김건희 특검·해병대원 특검)이 특검 수사결과를 포장해 브리핑하고 어느 한 재판에서라도 1심 유죄가 나오면 국민의힘은 망한다는 것이다.
▶ 식량 배급량 속인 죄 씌워
서기 198년 조조(曹操)는 원술(袁術)이 황제를 자칭하자 원술의 본거지인 수춘성(壽春城)을 공격했다. 하지만 전투가 장기화되면서 식량이 부족해졌다. 이에 조조는 군량미 담당관인 왕후(王垕)에게 식량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다. 왕후는 "길어야 닷새 분"이라고 보고했다. 조조는 "그 안에 전투를 끝낼 수 없다. 군사들 식량 배급량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명령했다. 왕후는 병사들의 불만을 우려했다. 하지만 조조는 배급량을 줄일 것을 명령했다. 왕후는 병사들의 식량 배급을 줄였고, 병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에 조조는 식량 배급이 왜 줄었는지 조사를 명령했고, 식량 담당관 왕후가 '되(升-승)를 속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조는 식량 배급량을 줄여 병사들 사기를 떨어뜨린 죄를 물어 왕후를 처형했다. 처형 전 조조는 왕후를 불러 "자네의 목을 취해 병사들 사기를 올려야겠네. 대신 자네 처자식을 잘 보살펴 주겠네"라고 약속했다.
조조가 왕후를 처형하자 병사들은 "조조 대장군(大將軍)이 군사들 식량 배급을 속일 리 없지"라며 환호했다. 수춘성 전투 승리로 조조의 중앙 권력 장악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국민의힘은 조조처럼 할 수 있을까?
▶인적 쇄신으로 변화 체감
정당이 당헌·당규를 개정하거나 새로운 공약을 발표한다고 국민들이 변화를 체감하기는 어렵다. 이는 정치학에서도 '민주주의 정치의 딜레마'로 보는 문제다.
정당 쇄신 영역은 넓지만, 유권자들은 '인적 쇄신'을 가장 선호한다. 익숙한 인물, 기존 주류가 물러나고 새로운 세대나 새로운 가치관을 대표하는 인물이 전면에 나설 때 '정당이 달라졌다'고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이는 대변인이나 당 간판을 바꾸는 차원이 아니라 새 인물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졌을 때 가능하다. 영국의 보수당(토리당)이 위기 때 새롭고 참신한 리더(데이비드 캐머런, 보리스 존슨 등)를 내세워 정권을 되찾거나 총선에서 대승한 것도 그런 전략이었다.
▶'윤 어게인'으로 당권은 가능
지난 전당대회에서 현재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든 세력은 누구인가. '윤 어게인' 세력이라고 본다. 내부 구도야 어떻든 '윤 어게인' 세력이 국민의힘을 대표한다. 국민의힘 지지층 중에서 다른 세력은 흩어졌고, '윤 어게인' 세력만이 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당 대표가 되려는 사람, 당 최고위원이 되려는 사람은 '윤 어게인' 세력을 끌어안지 않을 수 없었다. 장동혁 대표가 지난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한 것 역시 '윤 전 대통령 지지층'의 마음을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어게인'으로 당내(黨內)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으나 중원(中原·지방선거,총선) 전투에서는 이기기 어렵다.
▶이미 패한 전투 계속하는 짓
윤석열 전 대통령을 붙들고 있는 한 '윤 어게인'은커녕 국민의힘 재기도 불가능 할 것이다. 많은 보수우파 국민들이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것은 'AFTER 윤석열', 즉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지 '비상계엄'이 정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바탕 '탄핵 반대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했고,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됐다. 그것으로 '탄핵 반대 전투'는 끝났다. 아직도 그 전투에 매달리는 것은 패배를 계속 반복하며, 출혈을 키우는 바보짓일 뿐이다.
▶조조의 길을 갈 수밖에
국민의힘이 재기하자면 조조의 길을 가는 수밖에 없다. '왕후'를 버리듯이 윤 전 대통령을 과거로 흘려보내야 한다. '윤 어게인' 목소리를 '우파 가치로 대한민국 재도약'으로 바꾸어야 한다. 앞으로 치러질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당 주류 교체와 함께 100% 상향식 공천 같은 획기적인 개혁안을 내놓아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뼈를 깎는 고통을 말로 대체?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지지율은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지지율은 오르지 않는다. 민주당에서 빠진 지지율이 국민의힘으로 이전되지 않는 것이다. 당 간판급 인물들에 대한 기대가 낮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민의힘은 익숙한 간판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새로운 이미지와 강력한 전투력을 갖춘 인물을 당 간판이자 실권자로 세울 수 있을까? 원론적으로는 백번 그렇게 해야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그 길 외에는 길이 없다. 저 조조는 일말의 고통도 없이, 마치 저녁 식사로 양(羊) 한 마리 잡듯이 충신 왕후를 버렸겠나. 뼈를 깎는 고통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