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전문 유학원을 운영하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단연 에세이다. 일정 이상의 최저 점수만 넘으면 내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학교에서도 에세이는 꽤 진지하게 평가한다. 15년간 학생 약 1천명을 합격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쓸데없는 스펙 한 줄 더 만들 시간에 에세이 한 줄에 힘을 더 실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학교당 1~3편 정도의 에세이가 필수다. 음악이나 미술 관련 학과는 일반 학과에 비해 에세이 양이 두 배 이상 많아질 수 있다. 예를 들면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음악대학의 명칭이 쏜톤 스쿨(Thornton School)인데 이 학교 음악학과에 지원하려면 USC와 쏜톤 모두에 지원서를 넣어야 한다. 국외 입시를 준비하는 예술 전공 수험생의 경우 10개 대학에 지원한다고 가정하면 에세이를 약 50편 써야 한다.
자연스럽게 유학원에서 하는 업무 중 에세이가 핵심이 되기에 수많은 유학 컨설팅 업체는 유명 작가나 대입 에세이 전문가를 고용하기도 한다. 나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입시생 에세이에 관여한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식견이 넓어질 수 있는 기회를 학생으로부터 빼앗고 싶지 않아서다. 대입 서류를 대신 써주는 게 부정 행위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뉴욕시 유명 사립대의 뮤직 비지니스 학과에 재미있는 주제의 대입 에세이가 있었다. 간략하게 줄이면 '당신이 편도 티켓으로 우주선을 타게 됐다. 플레이리스트에 10곡만 넣을 수 있다면 어떤 곡을 가져갈 것인가. 곡명과 가수를 쓰고 선정 이유를 간단하게 써라'였다.
해당 대학을 지원하려 했던 A 군은 내가 예상했듯 본인이 현재 푹 빠져 있는 힙합 아티스트 음악을 몽땅 넣었다. 게다가 선정 이유를 아주 열정적으로 잘 써왔다. 하지만 난 "에세이 주제를 제대로 읽어봐라. 어떤 단어가 핵심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라. 대학이 요구하는 인재상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라"고 했다.
주제문의 핵심이 '편도 티켓'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현재 빠져 있는 음악보다는 먼 미래의 나의 음악적 취향 변화를 예견하거나 우주선 안에서 평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나의 일상에 꼭 필요한 음악을 떠올려 봐야 했다. '우주선'이라는 전제는 평생을 갇혀 있어야 한다는 설정에 부합된 조건이라서 감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A 군은 얼마 안 가 에세이 목적이 음악 취향에 대한 학교의 궁금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군은 10년 뒤, 20년 뒤 그리고 50년 뒤 일생을 살아가며 겪어낼 수많은 사연과 함께 해줄 음악 10개를 진지하게 골랐다.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다.
등록한 학생의 명문대 합격이 내 직업적 이유라면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성장하는 것을 보는 일은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를 높여준다. A 군의 합격 쾌거는 단순히 명문대 타이틀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 대화에서 상대를 경청하고 의중을 파악하는 일을 아주 잘해 나갈 것이다. 세상에 기여할 사람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직업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김나연 HMA유학원 대표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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