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이들이 가장 불행한 나라 중 하나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미만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65%(2022년 기준)로 OECD 국가 중 30위, 뒤에서 5등으로 하위권을 차지했다. 2020년(67%)보다 2%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청소년의 평상시 스트레스를 느끼는 '일상적 스트레스 인지율'은 2023년 37.3%에서 지난해 42.3%로 5.0%포인트 급증했다. 이는 2013년 41.4%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65%, 42.3%라는 수치는 바로 와닿지 않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들의 숫자는 아프게 꽂힌다. 2023년 만 18세 미만 아동·청소년 중 자살로 사망한 인구는 10만 명당 3.9명으로, 2000년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심지어 15~18세 자살률은 10만 명당 11.4명이었다.
우리 사회의 아이들이 불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들 알고 있지만, 최근 큰 파장을 일으킨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해외 인터뷰에서도 그 이유 중 하나가 언급됐다.
임윤찬은 지난 8월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공부한 마지막 시기는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웠다"며 "마치 지옥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한국이 그립지 않나'라고 묻자 "아니다"라며 이 같은 답이 나온 것이다.
임윤찬이 꼽은 문제는 '지나친 경쟁'이었다. 그는 "한국은 좁고 인구가 많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며 "모두가 최고가 되기 위해 안달이 나 있고, 때로는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고 했다.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천재 피아니스트의 발언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경쟁를 버텨 낸 그에 대한 안타까움과 우리 사회의 오랜 문제에 대한 공감을 쏟아 냈다.
대통령 또한 지나친 경쟁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교육 정책에 대한 질문을 받고 "교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경쟁의 문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수시로 할 거냐, 정시로 할 거냐, 온갖 논쟁거리가 나오지 않나. 지금 현재와 같은 최악의 경쟁 상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문제는 영원히 해결이 안 될 것"이라며 '과잉 경쟁'이 근본적인 문제임을 강조했다.
과도한 경쟁이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해결책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통령은 "교육 입시 정책, 입시 제도 자체를 어떻게 개편하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냐. 거기에 별로 큰 비중은 없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경쟁 과잉 상태이기 때문"이라면서도 뚜렷한 답은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임윤찬의 인터뷰에 약간의 힌트는 있었다. 임윤찬은 오랜 스승인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 손민수에 대해 "저의 길잡이이자 구원자"라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2023년 임윤찬은 스승을 따라 한국을 떠났고, 미국 보스턴에서 지내며 뉴잉글랜드음악원 유학 생활을 하고 있다.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지옥처럼 느껴지는 환경에서 구해 줄 어른이, 과도한 경쟁의 해결책은 될 수 없을지라도 한 아이를 불행에서 건져 낼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