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동률]산업재해 예방, 의식·체계·이행의 균형에서 답을 찾다

입력 2025-10-16 17: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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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대구본부 광역사고조사센터장

박동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대구본부 광역사고조사센터장
박동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대구본부 광역사고조사센터장

최근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가 화제다. 필자도 모처럼 가족과 그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영화를 보기 전 문득 궁금했다. '대체 무엇이 어쩔 수 없을까?'.

생각의 흐름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산업안전을 업으로 삼은 필자에게 '산업재해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도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일까'하는 의문을 남겼다.

산업현장의 재해는 한 사람의 생애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회적 비극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안전장비가 고도화됐지만, 여전히 매년 수많은 근로자가 현장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 조사 건수를 기준으로 올해 대구경북 지역의 업무상 사고사망자는 전년 동기 대비 약 66% 이상 증가했다.

반복되는 재해의 이면에는 여전히 '안전보다 생산이 우선'이라는 낡은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재해를 불가피한 위험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가 '예방가능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핵심을 크게 '사고사망자 예방 3요소'로 정리하고자 한다. 각각 ▷안전의식 확립 ▷안전보건체계 구축 ▷안전수칙 이행이다.

첫째, 안전의식을 확립해야 한다. 산업현장의 안전은 제도나 장비보다도 사람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기계의 고장이 아니라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방심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안전수칙 준수는 단순한 규율이 아닌,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의 표현이다. 경영진에서부터 현장 근로자까지, 모든 구성원이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형식적인 캠페인보다 지속적인 교육과 참여 중심의 안전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근로자가 스스로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개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때, 진정한 안전의식이 뿌리내릴 수 있다.

둘째, 체계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아무리 높은 안전 의식이 있어도 이를 실현할 시스템이 없다면 안전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산업현장의 안전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위험요인에 대한 사전평가, 표준화된 관리 절차, 사고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기업은 안전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해야 하며, 관리자는 단순한 감시자가 아닌 협업과 조정을 이끄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부 또한 기업의 자율적인 노력을 지원하되, 미이행 시에는 엄정한 감독과 법적 제재를 병행해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안전수칙을 이행해야 한다. 이는 근로자의 안전권과 같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현장에서는 생산성과 비용 절감이 앞서며, 근로자의 권리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근로자가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거나 개선을 요구했을 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원·하청,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에게도 동일한 안전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권리가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제도나 장비도 현장을 바꿀 수 없다.

결국 산업재해 예방은 한 조직이나 제도만의 책임이 아니다. 개인의 안전의식이 습관으로 자리 잡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현장에서 작동하며, 권리가 존중되는 문화가 뿌리내릴 때 비로소 재해 없는 일터로 나아갈 수 있다.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의 전제이며, 인간 존엄을 지키는 사회의 최소한의 약속이다.

산업안전은 '누가 잘못 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과제다. 이제는 의식의 변화와 제도의 혁신, 권리의 존중이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신뢰를 지키는 길이며,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미래다. '사고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통념을 이젠 내려놓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