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마굴리스와 세이건의 '마이크로코스모스'(1986, 2008; 홍욱희 옮김 2011)에 따르면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난 것은 적어도 35억 년 전 일이다. 처음 20억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은 미생물이 지구를 지배해 왔으며 미생물 번성의 주된 동인(動因)이 '공생'(共生)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마이크로코스모스'보다 127년 전에 나온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생존과 번영의 원인을 공생에 대립되는 '적자생존'(適者生存)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다윈의 적자생존이 진화의 주된 동인으로 여겨지고 있던 와중에 마굴리스와 세이건이 공생이라는 새로운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적자생존이란 개체 간의 무한 경쟁, 즉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개체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도태(淘汰)되는 것으로 생태계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적자생존이라는 이 무서운 단어는 나와 너의 관계를 내가 이득을 얻는 만큼 상대는 잃게 되는 '영합(零合) 게임'(zero-sum game)으로, 즉 세상을 살벌한 경쟁의 장으로 만든다.
이때 마굴리스와 세이건이 공생을 주 요인으로 내세움으로써 생명체 간의 관계를 승자독식의 영합 게임이 아닌 모두가 함께 이득을 얻는 윈윈(win-win)이 가능한 '비영합(非零合) 게임'(non-zero-sum game)임을 보여 주었다. 다윈은 경쟁과 적자생존을, 마굴리스와 세이건은 협력과 공생을 강조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주변에 흔한 지의류, 즉 이끼가 두 가지 생명체의 결합, 즉 공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물에서만 살던 녹조류는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있었기에 그것을 통해 유기물 영양소를 만들 수 있었으므로 육지에 올라가 살고 싶었다. 그러나 수분을 제공해 주며 머물 수 있는 집이 없었다.
그런데 육지에 살던 곰팡이는 몸속에 수분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광합성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곰팡이는 늘 배고팠다. 육지에 집이 없던 녹조류, 집은 있지만 양식이 없어 굶주리고 있던 곰팡이, 이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완벽한 한 쌍이었다.
녹조류는 곰팡이 속으로 들어가 곰팡이가 지닌 물을 사용하여 광합성을 했고 이를 통해 자신과 곰팡이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었다. 곰팡이는 그런 녹조류를 감싸고 보호해 주며 부지런히 광합성에 필요한 수분을 제공했다. 녹조류는 육상에서 살고픈 꿈을 이뤘고, 곰팡이는 굶주림에서 해방되었다. 이들이 산과 들의 바위와 나무 둥치마다 녹색으로 번창하니 우리는 이들을 이끼라 부르는데 경북대 생명과학부 김사열 명예교수에 따르면 국내에만 1천여 종 이상이 살고 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적자생존과 공생은 상호 배타적인 원리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둘은 생명체가 살고 번성하는데 동전의 양면같이 공존하는 기본 원리들이다. 적자생존이 생명체 각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에 공생은 생명체 간의 관계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미시 세계에 적용되는 이 두 원리가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박테리아와 같이 세포핵이 없는 원핵(原核)생물에서 세포핵을 지닌 진핵(眞核)생물로, 여기서 원시 생물과 동물로, 여기서 다시 인간으로까지 최소 35억 년 동안 진화해왔다. 그러니 인간이 박테리아였을 때의 본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명 보존을 위해서 기본적으로는 적자생존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내 앞에 존재하는 상대를 의식해야 한다. 우리가 시선을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이웃으로, 이웃에서 사회로 돌려 공생의 범위를 넓힌다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아질 것이다.
이념과 진영 논리도 마찬가지다. 이념과 진영이 같은 사람만을 생각하면 그것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원리만을 좇는 것이 된다. 이념과 진영이 다를지라도 그들을 낭떠러지 끝으로 내몰 수만은 없다. 그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나라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만 잘 살면 된다는 건 적자생존을 좇는 근시안적 사고다. 함께 잘 사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제대로 된 행복 추구이다. 이달 말부터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적자생존의 무한 경쟁이 아닌 협력과 공생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