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다시 보는 그때 그사건
2000년 추석 5세 여아 살해…계모 징역 15년
2000년 9월 9일 추석을 앞둔 전남 여수의 한 마을.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작은 집의 큰방에선 텔레비전 소리와 함께 옥수수를 씹는 소리가 났다.
시아버지 A씨와 시어머니, 며느리 B씨, 그리고 의붓딸인 5살 C양이 다 함께 앉아 있었다. 겉보기엔 모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 평화로운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C양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C양은 몇 시간 후 마을회관 앞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집 안에 있었다.
◇명절에 5살 아이 살해한 계모…"시부와 성관계 목격"
2000년 9월 9일 저녁 온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던 중 계모 B씨는 의붓딸인 C양을 살해할 목적으로 욕실로 데려갔다. 그곳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했고, 작은방으로 옮긴 뒤 장난을 치는 듯 C양 위에 올라타 베개로 입과 코를 수차례 눌렀지만 또 실패했다. B씨는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 나와 C양을 안고 집 밖으로 나가다 마을 주민에게 들키자 곧바로 마을회관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C양을 살해했다.
C양이 돌연 실종되자 가족들이 온 마을을 찾아나섰고, C양은 몇 시간 뒤 마을회관 인근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골목길에서 어떤 여자가 5~6세 여자아이를 받쳐 들고 서성거리더라'는 목격자의 진술이 확보되면서 계모 B씨가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사는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B씨는 믿기 힘든 얘기를 쏟아냈다. 범행 전 A씨와 방에서 성관계를 하던 중 C양에게 발각됐고, 이를 본 C양이 "엄마, 뽀뽀는 아빠하고만 해야지"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A씨는 친손녀인 C양이 가족에게 이를 말할까 봐 우려했고, B씨에게 "아이를 기절시키면 자신이 뒷처리를 하겠다"고 시켰다는 게 B씨의 주장이었다. 두 사람은 그해 2월부터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B씨의 진술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달라졌다. 처음엔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말하더니 "골목길에서 넘어져 머리를 부딪힌 아이를 데려와 마을회관에 눕혔다"고 했다가 "시아버지가 흉기를 들고 따라가 아이를 찔렀다"고 또 말을 바꿨다. 때론 "자신이 혼자서 살해했다"고 인정했고 다시 "시아버지와 함께 계획한 범행이었다"고 번복했다.
◇진술 수차례 번복…계모 징역 15년, 시부 징역 5년
법원은 범행 과정이 매우 계획적이고 잔혹했으며, 이후에도 B씨가 범행을 은폐하려는 정황이 확인된다고 판단했다. B씨는 범행 다음 날 피해자의 속옷을 세탁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고, 범행 당시 입었던 옷에서는 피해자의 혈흔이 검출되기도 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B씨의 부인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 99.54%'라는 결과가 나왔으며, 진술을 수차례 바꾸는 등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이어갔다. A씨는 줄곧 "B씨와 성관계를 가지거나 B와 공모해 아이를 살해한 사실이 없다"고 범행을 부인했다.
결국 법원은 A씨에 대해서는 징역 5년, B씨에 대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A씨가 B씨로 하여금 손녀인 C양을 살해하도록 한 사실을 인정한다"며 "B씨의 범행은 죄질이 불량하고 수법이 잔인한 데다, 진술을 번복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등 반성의 태도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