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및 판매 유예기간 연장함과 동시에 현실적인 인증체계 마련해야"
환경부, 타 부처와 주무부처 가리기 급급...업체 줄도산에 방역 피해 눈덩이 전망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전염병'이 동시다발적으로 확산하며 국가 방역 체계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방역의 핵심 수단인 '야생동물 기피제(기피제)'가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와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 탓에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자연 생태계 훼손 지적을 받아온 1천600km의 철제 방역 울타리를 철거하고 기피제 살포를 대안으로 내세웠음에도, 정작 정부의 인증체계가 기피제 생산을 가로막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매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들어 ASF 발생 건수는 벌써 22건에 달하며 역대 최악의 확산세를 기록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염병 매개체인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농가 침입을 막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인 기피제는 곧 재고가 모두 소진되고 품절 상황을 맞을 예정이다.
문제는 기피제가 살생물제품 인증 체계로 편입되면서 불거졌다. 현행법상 살생물제품 승인을 받으려면 '우수실험실운영기준(GLP)'에 따른 수십 가지 시험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는 유해 생물을 '살상'하는 살충제 기준에 맞춰져 있다. 단순히 냄새로 접근을 막는 기피제의 특성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기피제를 억지로 살충제 기준에 맞춰 인증을 받아 생산하라는 것인데, 사실상 영세한 제조업체들에게 폐업선고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제도 내에 인증을 획득한 기피제는 단 1개도 없다.
특히 기피제의 제조 유예기간은 이미 지난해 말 종료됐고, 판매 유예기간마저 오는 6월 30일이면 끝난다. 해당 기간 동안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방역 문제와 업체 줄도산 우려는 현실화 될 수밖에 없는 상황.
현장의 비판이 거세지자 현행법의 주무부처인 기후환경에너지부는 기피제를 '농약'이나 '동물용 의약외품'으로 분류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방역 상황으로 인해 아직 논의를 진행하지 못했다"며 "곧 주무부처 등을 정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업계는 이를 '전형적인 엇박자 행정'으로 보고 있다.
기피제가 농약 등으로 분류될 경우 관련법에 따라 또다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새로운 인증을 받아야 한다. 오히려 살충제 기준 인증보다 더 난해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익명을 요청한 방역 현장 관계자는 "기피제는 이미 수년간 현장에서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인증을 이유로 단종 될 상황인지 몰랐다. 기피제 말고 대안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더 이상 구하지 못한다면 걱정은 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공급 차질은 이미 시작됐다. 한 기피제 판매 업체 관계자는 "지자체의 구매 문의가 빗발치고 있지만, 생산이 중단돼 재고가 거의 바닥난 상황이다. 조금씩 나눠 제공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피제의 주무부처를 다시 정하는 동안, 발생할 업체들의 도산과 방역 공백의 책임은 누가 지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정부가 광역 울타리를 철거하면서 내놓은 '기피제 살포' 대안이 정작 정부 스스로 만든 규제에 막혀 공수표가 된 상황이 됐다.
방역업계 관계자는 "위험 제품을 솎아내야 할 제도가 필수 방역 제품까지 밀어내고 있다"며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를 멈추고, 6월로 다가온 제조 및 판매 유예기간을 즉각 연장함과 동시에 현실적인 인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