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부부 싸움을 하면, 뭐라 부를까요" "육박전이죠!" 그가 1971년 가수 윤형주 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던진 조크(joke)다. 실없이 던진 농담인지, 의도한 풍자(諷刺)인지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는 서슬 퍼렇던 시절 최고 권력자를 웃음 소재로 다뤘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자,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아깝다. 총독 집무실 자리에 화장실을 만들어 전 국민이 시원하게 '볼일'을 보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 28일 영면(永眠)에 든 1호 개그맨 전유성 씨의 유명한 일화다.
그는 '개그계의 대부(代父)' '한국 코미디의 선구자'로 불렸다. 코미디언 최양락 씨는 "이 땅에 '개그맨'이란 호칭을 처음 만들고, '개그콘서트'를 만든 분"이라며 "최초로 코미디학과를 세우고, 소극장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도 몸소 나선 인정 많으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전유성 씨는 대구경북과 인연이 깊다. 2007년 경북 청도군에 정착해 '개나소나 콘서트' '코미디철가방극장'을 만들어 청도를 전국에 알렸다. 창의적인 재능으로 농촌 발전을 이끌었다는 공로로 '대한민국 농어촌마을대상' 장관상을 받았다. 대구의 한 삼계탕 식당의 개업식과 치맥축제에서 '닭 위령제(慰靈祭)'를 기획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밥값 정도만 받고 지역의 여러 축제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고인은 데뷔 때부터 한국 코미디계 주류와 결이 달랐다. 그는 몸으로 웃기는 '슬랩스틱'뿐 아니라 풍자와 해학(諧謔)의 언어로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고 믿었다. '말로 웃기는 노선'을 고수한 것이다. 그의 대사는 하드보일드(hard-boiled) 스타일이다. 첫맛은 무미건조(無味乾燥), 곱씹으면 감칠맛이다. 백열등보다 형광등에 가까운 개그라고 할까. 전 씨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다. '코미디언은 남을 웃겨야지 스스로 웃으면 안 된다'는 게 고인의 웃음 철학이었다. 오죽하면 '전유성을 웃겨라'라는 방송 프로그램까지 있었겠나. 자신은 무대에서 조연에 만족했고, 후배들에겐 든든한 뒷배가 됐다.
웃음이 가난한 세상이다. 삶은 각박하다. "정치가 더 웃기니 '개콘' 인기가 시들하다"란 조소(嘲笑)가 나온다. 여의도에서 막말이 쏟아지는 지금, 전유성의 개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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