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정 문화부 기자
어느덧 달력은 한 장밖에 남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올해를 돌아보게 된다. 다이어리에 빼곡히 들어찬 일정만큼 올 한 해도 대구 문화예술계는 쉼 없이 움직였다.
지난해보다 상황이 나아졌냐고 묻기도 민망할 만큼, 3년 연속 예산이 삭감된 탓에 창작 활동이 녹록지 않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술인들은 언제나 그래 왔듯 붓을 잡고 캔버스 앞에 서거나 무대를 지켰다.
자랑스러운 몇 장면들을 돌이켜 본다. 이배, 이강소, 박종규 등 세계 미술 무대에 우뚝 선 대구·경북 출신 작가들의 활약이 빛났고, 에스토니아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대구산(産) 오페라가 기립 박수를 받았다.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대구사진비엔날레에 세계 사진계의 시선이 대구로 쏠렸고, 지난해 개관한 대구간송미술관은 '한국 관광의 별'에 신규 선정되며 이제 대구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과 월드오케스트라페스티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전국 관객들이 몰리며 '공연 도시 대구'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어찌저찌 잘 보낸 한 해 같은데, 정작 중요한 것들이 해결되지 않은 듯한 찝찝함이 남는다.
그중 하나가 3년째 제자리걸음인 국가문화예술허브 사업이다. 국가문화예술허브 사업은 경북도청 후적지에 대구국립근대미술관과 국립뮤지컬콤플렉스 등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2022년 국정 과제에 선정되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옛 경북도청 건물을 사용 중인 대구시청사 이전이 지연되며 사업도 도무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여기에 전(前) 시장이 사업 부지를 달성군 대구교도소 후적지로 변경하는 방안을 문화체육관광부에 갑작스럽게 제안하며, 지역 주민 간 갈등을 부추긴 채 시간만 흘려 보냈다. 결국 지난해 문체부가 이를 거부하며 부지는 당초 계획대로 확정됐고, 그 후 1년여간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지난달 국회 문체위 국정감사에서 김승수 의원이 이에 대해 질의하자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지역 문화의 균형발전 측면에서 거점도시별 특화된 부분을 잘 살릴 필요가 있다"며 "적극적으로 의지를 갖고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내년에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에 선정될지 여부도 불투명해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 대구는 문화 인프라 확충이 절실한 상황이다. 부산의 경우 1천727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 극장 드림씨어터와 얼마 전 문을 연 부산콘서트홀이 올해 역대 최대 티켓 예매수와 판매액 실적을 견인했다. 내년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도 개관할 예정인데, 지역 문화 경쟁력을 결정 짓는 인프라 격차가 더욱 심화할 전망이어서 우려가 앞선다.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 환경 개선과 지원을 도맡은 대구문화예술진흥원도 출범 4년 차인 올해, 조직 내 문제들이 수면 위로 하나둘 드러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구시가 결국 특별감사에 나섰고 자체적으로 혁신자문단을 꾸렸지만, 과연 문제의 본질을 잘 꿰뚫어 해결책을 내놓을지, 그저 보여 주기 식에 그치지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에는 이러한 걱정들을 불식시키고,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다리를 젓는 예술인들에게 힘을 실어 줄 좋은 소식이 더욱 많이 들려오길 기대해 본다. 지금까지 쌓아 온 탄탄한 대구 문화의 저력이 더욱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제자리걸음이 아닌 앞으로 내딛는 한 걸음이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