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 칼럼] 권력이 물지 말라면 물지 않는 '권력의 개'

입력 2025-11-17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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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논설주간
정경훈 논설주간

대장동 일당과 이들이 '저수지'에 숨겨 놓았다는 428억원의 주인 '그분'은 지금쯤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거둔 7천300여억원의 수익이 검찰의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로 추징이 어렵게 됐고 '그분'의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대장동 일당이 감옥에서 몇 년만 썩으면 이 돈은 모두 국고로 환수되지 않고 그들의 합법적 재산으로 둔갑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항소 포기는 성남 시민, 나아가 국민 전체에 대한 배임이자 배신이다. 준사법기관으로서 이럴 때 쓰라고 국민이 쥐여 준 칼을 칼집에 넣어 버렸다.

이는 법치가 정치권력의 비정(秕政)에 의해서만 망가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바로 사법 행정조직이 권력에 순응(順應)할 때도 법치는 망가진다. 이를 입증하는 구체적 사실(史實)이 나치 독일 검사들의 순응이다.

나치의 권력이 절정에 달한 1930년대 후반 히틀러 폭정의 도구, 비밀경찰 게슈타포는 정치범을 '예방구금'이라는 명분하에 법적 근거 없이 체포해 정치범 수용소와 감옥에 가두었다. 법원이 무죄로 판결한 정치범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었다. 히틀러의 특별 명령으로 설치돼 나치 이념을 추종하는 판사들로 채워진 민족재판소가 무죄 판결한 정치범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후(事後) 예방구금은 민족재판소가 '독일 제국 최고위 법원으로 완전히 주권적인 기관'임을 자부했던 민족재판소 판사들에게 용납할 수 없는 권한 침해이자 모욕이었다.

이 때문에 민족재판소는 게슈타포와 갈등을 빚었지만 그것도 잠시 1940년부터 게슈타포에 순응했다. 민족재판소에 부속된 검사는 법무부 장관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저는 반국가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가 석방된 사람을 게슈타포에 넘기는 것이 적절한가를 놓고 민족재판소장과 의논했습니다… 앞으로 저는 별도의 지시가 없는 한 다음과 같이 처리할 것입니다. '민족재판소장과의 합의에 따라 무죄 혹은 재판 종료가 선언되거나 그때까지의 구속기간으로 형 집행이 완료되었다고 선언될 경우, 게슈타포가 분명히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게슈타포에 넘긴다. 명백한 증거에 의해 무죄가 선언된 경우, 게슈타포에 그 점을 명시하면서 그럼에도 예방구금이 불가피한지 게슈타포에 문의한다. 그때 게슈타포가 예방구금이 불가피하다고 하면 해당 인물을 즉각 게슈타포에 넘긴다'"(「히틀러 국가」, 마르틴 브로샤트)

검찰의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법이 하라고 시킨 일을 스스로 포기하고,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언급한 '저쪽'의 요구에 순응한 것이다. 검찰이 대장동 재판 항소를 해야 할 당위성은 성남시민에게 돌아가야 할 7천300여억원의 국고 환수를 포함, 민간업자가 지방권력과 결탁해 부정한 방법으로 천문학적 돈을 꿀꺽한 불의의 단죄(斷罪)이다.

검찰은 이를 외면했다. 노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은 항소 포기 이유에 대해 '정권의 의중을 거스를 수 없어서'라는 취지로 말했다. 검찰이 검찰이기를 부정하고 '권력의 개'가 된 것이다. 권력이 물라면 물어도 '권력의 개'이고, 물지 말라면 물지 않아도 '권력의 개'이다. 비겁하게 권력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점에서 다를 것이 없다.

사표를 낸 서울중앙지검장도 마찬가지다. "중앙지검의 의견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면서도 항소장에 사인하지 않았다. 담당 검사도 마찬가지다. 항소 의견을 냈지만 강행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현행 규정상 검사가 상관의 지휘에 반하는 결정이나 처분을 할 때 내부적으로 징계 사유가 될지언정 대외적 효력은 완전히 유효하다. 친정부 정치검사로 불리는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도 "항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검사장을 포함해 서울중앙지검 소속 누구든 징계 취소 소송을 각오하고 항소장에 서명해 제출했으면 됐다"며 이 점을 분명히 했다. 항소할 수 있는데 안 해 놓고 무슨 구차한 변명이냐는 조롱이다.

이런 비판과 비웃음에도 노 전 권한대행은 퇴임식에서 항소 포기의 구체적인 경위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검찰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물러난다"였다. 헛웃음이 나온다. 1년 뒤면 검찰은 없어지는데 '미래'라니. 꺼지기 전 가장 밝게 빛나는 촛불처럼 검찰이란 조직이 사라지기 전 멋있게 국민이 준 소임을 다했으면 공직 생활의 빛나는 마감이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