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最高) 배우로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렸던 '국민 배우' 안성기의 수십 년 전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거의 30년간 해마다 영화상을 받았던 터라 몇 년도인지 무슨 상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199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그해도 어김없이 연말 영화 시상식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수상자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하면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고 있을 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대 맨 앞줄 한가운데에 있어야 할 주인공이었지만 가운데도, 앞줄에도 그는 없었다. 카메라도 순간 당황했는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마침내 무대 맨 뒤쪽 커튼 앞에 서 있던 그를 찾아냈다. 보일 듯 말 듯 숨바꼭질하듯 미소 띤 채 서 있었다. 당대 최고 배우였지만 수상 때마다 겸손한 모습으로 조용히 미소만 짓거나 합동 피날레 장면에서 동료 수상자들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넘어 존경심까지 불러일으켰다.
겸손하기만 해선 힘든 직업도 있다. 정치인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정치계가 겸손해선 살아남기 힘든 세계이기도 하거니와 전투적이라야 그나마 '말발'도 먹히고 주목도 받고 지지층으로부터 인정도 받을 수 있어서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번 22대 국회는 넘쳐도 너무 넘친다. '오만불손(傲慢不遜)'의 극치(極致)를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오죽하면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를 두고 '역대 최악(最惡) 저질(低質) 국감', 이번 국회를 두고는 '동물 국회만도 못한 국회'라고까지 하겠는가. 특히 이번 국감에선 교만의 '끝판왕' 경쟁을 보는 듯했다. 본인만 돋보이면 상대가 의원이든 참고인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짓밟았다. 주목만 받을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 기세였다. 아무리 한쪽, 강성만 보고 정치를 한다 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있다. 본인 얼굴만 낼 수 있으면, 자기 홍보만 된다면 남이야 어찌 되든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다는 모습에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였다.
더 뻔뻔하고 더 목소리 크고 더 나서고 더 강한 척해야 주목받고 살아남고 면죄부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돼 가고 있다. 겸손의 미덕(美德)은 어디 갔는지, 안성기가 더욱 생각나는 시절이다. 혈액암이 재발돼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진 그의 쾌유와 건강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