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산망 마비, 이중화 부실·노후 배터리 관리 소홀 드러나
대전 국정자원 화재로 행정 서비스 장기간 중단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정자원)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로 국가 전산망이 대규모로 마비되면서 정부의 전산 이중화 대책이 부실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2022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불거진 '카카오톡 먹통' 사태의 행정 버전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화재로 국정자원 대전 본원 내 정부 전산 시스템 647개가 멈췄다. 이 중 직접 피해를 입은 96개를 제외한 551개 서비스를 우선 복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복구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국민 불편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전산망 이중화 부족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데이터 백업은 이뤄져 있었지만, 한쪽이 마비됐을 때 곧바로 이어받아 작동할 체계가 없어 복구가 지연됐다는 분석이다. 전산실뿐 아니라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냉각 장치, 화재 방지 장치까지 모두 이중화돼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던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지역 분원에 백업 데이터가 있었음에도 가동할 장비가 부족해 복구 속도가 늦어졌다는 점도 드러났다. 행안부 관계자는 센터 간 백업 체계는 갖췄으나 장비 여유분 확보가 예산 문제로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3년 전 카카오 사태 이후 정부가 민간기업에는 대비책을 요구하면서 정작 정부 시스템에는 같은 수준의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당시 카카오톡 마비로 전 국민이 불편을 겪었지만, 이후 정부가 전산망에 대한 근본적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이번 화재의 직접적 원인으로는 전산실 내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가 지목된다. 문제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2014년 납품돼 10년 사용 연한이 지난해 이미 지났음에도 교체되지 않은 채 계속 쓰이고 있었다. 화재 당일 작업자들이 노후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는 과정에서 전원이 차단된 배터리 중 한 개에서 불이 시작됐다.
행안부와 국정자원 측은 계획된 네 차례의 이전 작업 중 세 번째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으나, 업계에서는 배터리 전원을 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선을 분리해 쇼트가 났다는 '휴먼 에러' 가능성도 제기한다. 소방당국은 약 22시간 만에 진화를 완료했고, 현재 관계 기관이 합동 감식과 피해 규모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재해·재난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대전 본원뿐 아니라 광주와 대구 분원에 이중·삼중 시스템을 마련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복구 지연이 국가 안보 차원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