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의 여파로 북미·유럽 배터리 기업들이 위축되면서 한국 배터리 3사를 포함한 '빅5' 체제가 한층 견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나트륨 이온 배터리 제조업체인 나트론 에너지는 이달 초 캘리포니아주 본사와 미시간주 공장을 영구 폐쇄하고 임직원들을 해고했다. 회사는 최근 노스캐롤라이나주에 계획했던 14억달러 규모의 신공장 건설 프로젝트도 중단했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투자 계획을 알린 지 약 1년 만이다.
나트론 에너지는 나트륨 이온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과 친환경성을 강점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투자 유치와 신규 수주 확보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유럽 최대 배터리 기업인 스웨덴 노스볼트 역시 캐즘과 가격 경쟁에 밀려 파산했으며, 노르웨이 프레이어도 26억달러 규모의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철회했다.
실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아시아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기준 상위 10개 기업은 모두 아시아에 몰려있다.
배터리 정보업체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BMI)는 2022년 "전 세계 120여개 배터리 업체 가운데 상위 9개가 글로벌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불과 2∼3년 만에 과점 구도는 빠르게 좁혀졌다.
올해 1∼7월 기준 상위 5개사(CATL·BYD(비야디)·LG에너지솔루션·CALB·SK온)의 점유율은 73.4%로, 사실상 '빅5'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내수 시장의 점유율을 바탕으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동력배터리산업혁신연맹(CABIA)에 따르면 올해 1∼8월 중국 배터리 시장에서 CATL(45.2%)와 BYD(24.1%)의 합산 점유율은 약 70% 수준이며, 3위 CALB는 약 7.4%에 그쳤다.
상위 업체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건 그만큼 배터리 시장이 기술·자금 면에서 진입 장벽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는 중국 기업과 한국 업계의 경쟁 심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은 기술 경쟁을 넘어 자본·공급망 안정성·품질 관리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경쟁력이 요구된다"며 "결국 소수 플레이어만이 완성차 기업의 신뢰를 얻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기업이 우위를 가져갈 수 있도록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