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23일(이하 현지 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를 가리키는 "엔드(E, N, D) 이니셔티브로 한반도 냉전을 끝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핵 개발 중단-축소-폐기'의 3단계 비핵화(非核化)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이 22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 동결에 대해 "실행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 것을 감안할 때, 비핵화 합의 없는 핵 개발 중단 또는 핵 동결(凍結)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를 가진 채, 남북·미북 대화 재개와 대북 제재 완화 등을 추진하자는 주장인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1일 연설에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 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와 북한의 입장이 서로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실질적인 '핵 보유국'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안보(安保)를 어떻게 지키고 보장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적이 없다. 안보 공백(空白)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UN 연설 내용과 세계 각국의 움직임이 크게 다른 점도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들은 23일 회동을 갖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납치 문제의 즉각 해결을 위한 우리의 의지를 재확인한다"는 공동성명(共同聲明)을 발표했다. 전날 한미일 외교장관 공동성명에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했다.
국제사회는 남북 교류와 미북 회담 및 관계 정상화, 대북 제재 완화에 앞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이재명 정부의 외교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성명 표현을 '한반도 비핵화'로 바꾼 보도 자료를 배포해 국제적 불신을 자초했다. 이런 것이 외교 참사(慘事)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