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상준] 누구를 위한 청문회인가?

입력 2025-09-25 06:30:00 수정 2025-09-25 09: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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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 국장석부장

이상준 국장석부장
이상준 국장석부장

국회법상 청문회(聽聞會)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절차다. 국회 상임위원회가 입법·의정 활동 과정에서 국가의 주요 정책이나 현안에 대해 관련 당사자와 전문가를 불러 실상을 파악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이다. 쉽게 말해 국회의원이 국민의 뜻을 등에 업고 대신 물어보는 것이다.

1988년 11월부터 이듬해 연말까지 대한민국 제13대 국회가 연 '제5공화국 청문회'는 헌정사상 최초의 청문회로, TV에 생중계됐다.

정경유착 등 권력형 비리와 민주화운동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사한 당시 청문회에서 초선 의원이었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시류에 따라 산다"던 고 정주영 현대 회장으로부터 "바른 말을 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던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증언까지 받아냈다.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대변해 준 순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 국회 청문회의 현재 모습은 참담하다. 국민을 대변하는 청문회 스타는 더 이상 없다. 날카로운 질문은커녕 고성과 막말로 몸살을 앓는 난장(亂場)판이 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거대 여당이 주도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검찰 개혁 입법청문회' 역시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검찰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신설 등 검찰 개혁의 핵심 쟁점을 논의해야 할 청문회가 대북 송금 등 전 정부 시절 이재명 대통령이 연루 의혹을 받는 개별 사건을 규명하는 자리로 변질됐다.

이번 청문회 질의 과정에서는 이 대통령 변호인이었던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증인으로 불려 나온 대북송금 수사 검사를 거꾸로 취조(取調)하는 둣한 상황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검찰 개혁 입법청문회 도중 '조희대 대법원 대선 개입 의혹 관련 긴급 현안 청문회 실시계획서 채택의 건'까지 기습 상정했다. 박균택 의원이 갑자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의혹을 키우고 있다.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이는 지난 6·3 대선을 앞둔 5월 대법원이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이틀 만에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에 파기환송한 것은 대선 개입이라는 민주당 주장과 맞닿아 있다.

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퇴장 속에 거수 표결로 오는 30일 청문회 가결을 강행했다. 검찰 개혁 입법청문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조희대 청문회'만 남았다.

대한민국 최상위법인 헌법상 삼권분립(三權分立)에 어긋난다는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기어코 사법부 수장을 국회로 부른 초유의 청문회 이유서엔 달랑 네 줄이 달렸다.

'제429회 국회(정기회) 제5차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관련 긴급 현안 청문회를 위해 긴급 현안 청문회 실시 계획서 채택의 건과 증인 출석 요구의 건을 의사 일정으로 추가하여 심사함으로써 헌정 질서 회복에 기여하고자 함'.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안 추진에 앞서 국민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입법청문회는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거대 여당의 이 대통령 '사법 리스크' 방탄에 초점이 맞춰졌다. 국민을 대신해 대한민국 형사 사법 체계를 뒤흔드는 중대 사안을 다뤄야 할 청문회가 또다시 정치적 도구가 된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는 안중에도 없는 오만(傲慢)과 독선(獨善)의 정치, 국민과 역사의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