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근 정치권에서 인공지능(AI) 음성의 페이크뉴스로 시끄럽다. '그럴듯하나 가짜'였던 뉴스로 정치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어쨌거나 가짜뉴스와 음모론에 맛들인 자들은 '카더라' 정보를 검증도 없이 마구 퍼뜨릴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뉴스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대하되, 증거와 진실을 따져 묻는 비판적 안목과 공평무사한 덕성을 스스로 갖출 필요가 있다.
페이크뉴스란 '가짜, 거짓, 속임수'란 뜻의 페이크(Fake)와 뉴스를 합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가짜뉴스'라 옮긴다. 기사의 형태를 갖추긴 했으나 의도적으로 조작된 가짜 정보로, 사실이 검증 안 된 오보, 저질 불량기사(일명 찌라시) 등이 포함된다.
페이크뉴스는 흔히 음모론(conspiracy theory)과 연결돼 사회에 유포된다. 아니 음모론 자체가 페이크뉴스인 경우도 많다. 예컨대 "아폴로 11호는 사실 달에 가지 않았다", "세계는 비밀결사(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가 움직이고 있다." "9・11은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다" 등등.
요즘 주로 유튜브로부터 뉴스를 접하는 탓에 여러 음모론에 접한다. 흔히 음모론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나 실제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음모론은 왜 믿으면 안 되냐?"라고 따져 묻는다면, 대답이 그리 간단치 않다.
음모론에는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가치중립적으로 '음모'라는 관점에서 사태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다음으로, '추측'에 근거한 아마추어적 '창작 스토리'이다. 전자를 하얀 음모론이라면 후자는 검은 음모론이다.
어쨌든 음모론은, <증거에 의존하지 않고 논리적 비약과 추측을 함>, <드러난 분명한 사실을 중시하지 않음>, <자신이 창작한 스토리에 빠져있음>, <문제 된 사례에 대해 전문지식을 갖지 않음>, <비과학적인 전근대적 세계관에 기초함>, <반증 불가능한 자기봉쇄성(self-sealing)>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음모론에 빠지면 생각을 바꾸기가 참 어렵다.
음모론을 이해하는데 기준이 되는 것이 칼 포퍼의 견해이다. 그는 음모론을 "신에 의한 설명이 세속화 된 것"이라고 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신과 같은 전능한 행위자인 극히 일부의 개인이나 집단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 설명한다. 포퍼는 이것이 사회의 복잡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탓으로, 음모를 상정하는 건 미신의 표출이며, 음모론을 믿는 건 불합리하다고 했다.
그러나 찰스 피그덴은, 포프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고, 음모론을 믿는 것이 "불합리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음모론을 일반화하지 않고 한정적으로 이해한다면 그렇게 낯설고 특별한 건 아니다. 예컨대 '음모'를 "어떤 집단이 비밀 행동으로 어떤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은밀한 계획"이라고 정의한다면, 역사적으로 성공하거나 실패한 음모가 많으므로, 음모론을 믿는 것이 꼭 불합리한 것만은 아니다.
음모론의 불합리성을 주장하는 경우 '음모론'이라는 용어 자체에 이미 부정적인 가치평가가 포함돼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음모론은 <검증되지 않았고>, <그럴듯하나 가짜>이며, <중대한 사건이 사악하고도 강력한 집단에 의해 실행된 비밀 결과물>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음모론의 불합리성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음모론의 정의가 진위나 선악 같은 가치로부터 '중립적'이어야 한다. 음모론을 믿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잘못된 음모론만을 예로 들지만 실제 역사적으로 옳은 것으로 판명된 경우도 많다.
음모론은 배후에 움직이고 있는 음모를 상정하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이다. 이 점에서 일반의 과학이론과도 유사한 점도 있다. 그래서 음모론도 하나의 '이론'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과학이론처럼 어떤 음모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만큼 높은 지 제대로 조사, 검증할 길이 열린다.
'가짜뉴스다!'라는 발언이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은 믿지마!'라는 명령이나 권고로서 작동하며, 자신과 다른 의견을 억압하거나 그 발언을 무효화 하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될 위험성이 있다. 마찬가지로 "음모론이다!"라는 말도 상대의 발언을 부당하게 억압하지 않는지 경계하고, 권력자의 음모를 들춰내는 목소리가 들어 있다면 부당하게 경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음모론에는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니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사회의 폐쇄성이 아니라 개방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권력자가 권력을 남용하고 있는지 시민이 감시하고 제어하여 중대한 위해를 막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가 상대방을 부당하게 "음모론이다!"라고 낙인찍을 때는 논의할 가치 없이 반박하고 폭로해야 마땅하다. 음모론은 사태 파악에 대한 옳은 지식을 막아버리고, 부당하게 정치적 비판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나아가 반증 불가능한 오리무중의 큰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적으로 언급하는 음모론의 다양한 사례를 잘 분별하고, 불합리한 믿음을 갖지 않도록 유의하며, 열린 마음과 균형 잡힌 덕성으로, 편향된 가치들에 꾸준히 저항해 가야 한다. 불안한 가을날, 아무 이야기나 동네방네 떠벌리는 자들의 머리 위에도, 음모론 없는 둥근 보름달이 훤히 뜨리라. 그래서 한 수 가르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