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석민] 서희와 이재명

입력 2025-09-19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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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민 선임논설위원
석민 선임논설위원

'3천500억달러를 주는 것보다 관세 25% 맞는 것이 낫다'는 엉터리 전문가들이 설치는 세상이다. 대미 관세는 얼마든지 변한다. 더군다나 3천500억달러 투자는 이재명 정부가 먼저 제안한 것이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정상회담'이라고 선전 선동했던 것이 이재명 정부와 한국 언론들이었다. 애초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 이재명 정부와 이에 대해 찬양 일색이었던 자(者)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놀랍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에 관세 '0%'였던 한국이 일본·유럽 등에 비해 훨씬 높은 관세를 내야 한다는 것은 한국 제품이 경쟁력 자체를 상실한다는 뜻이다. 한국 자동차의 인기는 일본·유럽과 차별화된 제품 경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다'는 가성비(價性比) 덕분이었다. 지나치게 높은 관세로 인해 가성비가 사라지면 누구도 한국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을 것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는 차츰 무너지고 엄청난 실업과 함께 막대한 세수 결손까지 벌어진다. 다른 시장을 개척하면 된다고?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을 대체할 시장은 지구상에 없다.

1차 고려·거란 전쟁 때 활약한 재상 서희는 외교 협상으로 나라를 구한 대표적 인물이다. 거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국익 우선으로 행동했다는 것이 성공 요인이다. 당시 거란은 송(宋)과 전쟁을 할 때 배후인 고려를 안정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서희는 송과의 관계 단절을 수용하면서 나라를 지킨 것은 물론, 거란과의 국교 회복을 빌미 삼아 '강동 6주' 영토까지 얻어 냈다. 이전에 서희는 북송(北宋)과의 국교 수립에 대한 공로로 송 태조로부터 '검교 병부상서'라는 벼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 친분보다 항상 국익이 우선이었다.

한미 관세 협상을 단지 '돈' 문제로만 생각한다면 큰 착각(錯覺)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가 핵심이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숙청과 혁명'이라 언급한 국내 정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이를 애써 외면한 채 할 수도 없는 투자를 하겠다고 생색냈다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네가 나쁜 놈"이라고 억지를 부려서는 국익(國益)을 지킬 수 없다. 이재명 정부의 행태를 보면, 서희 선생의 통곡이 들리는 듯하다.

sukmin@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