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차 전기본 대폭 수정 시사
AI 전력수요 급증에도 신규원전 보류?…"제2의 탈원전" 우려도
원전·SMR 건설 도입안 핵심…사실상 '백지화→재논의' 시사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상향…원자력 산업 위축 초래 우려
AI 산업 에너지 확보에 차질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인 전력 공급을 책임질 원자력 발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탈원전 정책'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데이터센터 가동을 위해 충분한 전력 확보가 필요한 상황에 에너지 확보에 차질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신규 원전 백지화?
출범을 앞둔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이끌 김성환 장관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는 방향을 시사했다.
14일 관가에 따르면, 김 장관은 지난 9일 환경부 출입 기자들과 만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2024∼2038년 적용)에 반영된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과 관련해 "기존 원전은 안전을 담보로 계속 (수명을) 연장해 쓰더라도 원전을 신규로 지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민의 공론을 듣고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신규 원전) 의견은 최종적으로 12차 전기본에 담길 것"이라고 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김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이 지난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에 담긴 신규 원전 2기와 첫 SMR 건설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재논의하겠다는 방향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5년간 적용되는 전기본은 장기 수급 전망을 바탕으로 발전 설비를 어떻게 채울지 계획을 담은 문서로 2년에 한 번 새로 업데이트된다. 앞서 11차 전기본은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 반도체 등 첨단산업 발전, 전기차 보급 확대 등 전기화 전환 등 요인으로 2038년 전력 수요가 현 수준보다 약 30% 급증할 것으로 보고 총 2.8GW(기가와트) 설비용량 원전 2기를 2037∼2038년 도입하는 내용을 담았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이 반영된 2015년 7차 전기본 후 10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마련됐다. 또한 2035∼2036년에는 '차세대 미니 원전'인 SMR이 처음으로 0.7GW 규모로 들어서게 될 예정이었다. 아울러 탄소중립 전환 흐름에 발맞춰 2023년 30GW이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용량을 2030년과 2038년 각각 78GW, 121.9GW로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경 현재의 4배 수준으로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최신 한국형 원전 한 기의 설비용량이 1.4G가량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정국 주도권을 쥔 더불어민주당의 강한 요구로 당초 정부 원안 대비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상향 조정되고,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3기에서 2기로 축소됐다.
◆ 에너지 전환 어디로 가나
정부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국정 과제인 '재생에너지 대전환' 추진 차원에서 11차 전기본 대비 재생에너지 확충 속도를 올리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8월 국회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에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목표치를 올해 초 확정한 11차 전기본보다 상향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와 '제6차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하기로 했다.
아울러 2040년까지 설계수명이 30년을 넘은 석탄발전기 40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했다 결국 신규 원전 건설은 재검토하고, 재생에너지 확충은 당초 계획보다 더욱 서두르기로 하면서 확정된 11차 전기본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우리나라의 장기 전력 수급 계획은 새로 출범할 기후에너지환경부 주도로 작성될 12차 전기본(2026∼2040년)에서 다시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12차 전기본은 올해 하반기 공식 논의를 시작해 내년 하반기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김 장관의 '신규 원전 재검토' 발언으로 당초 올해 시작될 전망이던 신규 원전 부지 선정 절차는 12차 전기본 확정 뒤로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원자력 학계는 현 여당인 민주당의 적극적 의견이 반영된 11차 전기본에 반영 확정된 신규 원전 건설 재검토가 '제2의 탈원전' 정책이 시작된 것이라고 우려한다. AI발 전력수요 급증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의 전력 수급 안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원자력학회 관계자는 "AI 혁명, 데이터센터 확충, 전기차 보급 확대 등으로 국가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안정적인 대규모 기저 전력 확보는 국가 최우선 과제가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원전 건설·운영을 환경 규제 중심의 부처에 맡기는 것은 필연적으로 원자력 산업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