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의 연극 리뷰] '바람의 기억, 부채의 역사와 증언 '허석민 연출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입력 2025-08-29 06:30:00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극단 따뜻한 사람 허석민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극단 따뜻한 사람 허석민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부산 소극장 6번출구에서 공연된 연극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작 류수현, 연출 허석민 / 극단 따뜻한 사람 / 소극장 6번출구)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부터 2010년 현재를 관통하는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여성(분례, 우명희 분)을 통해 역사적 실체의 기억을 소환하며, '부채'라는 상징적인 오브제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연극은 일제강점기의 폭력, 해방 이후 친일파 미청산, 여성에 대한 역사적 억압 등 한국 현대사의 상흔을 다층적 시간 구조와 회상적 무대를 통해 재현함으로써, 친일과 일제강점기의 역사성을 복원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분례라는 여성의 몸에 새겨진 일본 경위(노부로, 김승환 분)의 잔혹한 나비 문신은 여성을 성적 도구화한 만행의 역사이기도 하다.

부채는 바람이 불어도 시간의 지속됨으로 치유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성을 은유적 장치를 통해 드러내며,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한일 간 과거사 문제,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폭력과 위안부 문제, 친일파 청산의 과거사 문제를 극중 인물 분례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으로 교차되는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바람이 불어도 나비처럼 날 수 없는 잔혹한 역사의 시간으로 박제되어 있는 분례의 이야기다. 70석 남짓의 소극장이라는 공간적 제약에서 실체적인 역사성을 서정적인 감정의 밀도로 연출적으로 공간화했다는 점에서 응집된 역사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극단 따뜻한 사람 허석민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극단 따뜻한 사람 허석민

◇감각되지 못한 역사

무대는 소극장 공간을 이원화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구조이다. 이러한 교차적 구조는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시간과 길이이기도 하며, 여전히 분례의 기억으로 망각될 수 없는 역사적 실체의 길이다. 연출은 이러한 역사성과 시간성을 좌측과 우측으로 이동하는 등퇴장로로 연결하고, 무대 중앙 공간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연속적으로 재현될 수 있는 공간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 뒤편 무색의 배경막은 때로 산과 마을, 은신처가 되기도 하고, 과거의 시간들이 재현되는 장소로 변주되기도 한다. 좌우 등퇴장의 길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을 이원화하면서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 역사의 과거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구도적 설정들로 되어 있다.

현재부터 1940년대까지 일제강점기의 역사로 부채의 바람을 타고 전환되는 극 중 장면의 시간들 속에서 식민지 권력의 잔혹한 폭력성을 마주하기도 하고, 분례의 위안부 동원을 협력한 조선인이자 일본 순사인 요시오가 해방 이후 갑부가 되어 여전히 뼛속까지 친일의 민족성을 드러내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를 20년 동안 찾아 헤맨 분례의 남편(화평)이 1960년대 장터에서 요시오를 마주하고 그를 처단하는 장면에서는 복수라는 상투성과 친일의 역사적 사실성을 현재화하지 않는 작가적 상투성이 드러나면서도, 한일 과거사와 친일파 청산을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극단 따뜻한 사람 허석민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극단 따뜻한 사람 허석민

연극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부채〉는 작가적 서술의 서사를 연출적으로 재현화한 것이 특징인데, 주인공 분례는 위안부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로 역사의 증언자이다. 이러한 기억들을 연극적인 드라마 서사로 연결하고 있는 것은 부채를 들고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은실이다. 부채는 두 사람의 기억의 물리적 매개체로 설정되고 있다. 은실은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분례를 만나, 날씨 이야기와 부채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가 점차 분례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은실은 "아버지가 평생 부채 팔러 팔도를 돌아다닌 장돌뱅이"였다는 고백을 하기도 하고, 분례도 젊은 시절 남편 화평(송준승 분)의 아버지(박호천 분)가 부채를 만드는 장인이었다는 기억을 회상하며, 무대는 1940년대 해방되기 전 일제강점기 젊은 분례의 시간으로 전환된다. 이 작품의 과거적 시간에서 재현된 서사적 구조는 단순하다. 부채에 화려한 한국적인 수채화를 그리며 장인으로 살아가는 화평이네와 젊은 분례, "세상에 큰 바람을 일으키라"는 아버지의 유지를 지니고 자란 인물인 화평, 일본 경위 노부로와 조선인이면서도 일본 앞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요시오의 장면적 서사가 집약되어 있다.

요시오는 친일의 가해자로 등장하고, 조선인이면서 조선인을 고문하고 민간인을 잡아가던 앞잡이로, 분례와 화평의 가족을 파괴한 인물로 그려진다. 해방 이후 그는 "김영출"이라는 이름으로 평범한 양복 차림의 시민이 되어 살아가는데, 대한민국 역사에서 단죄받지 않은 수많은 친일파를 상징화한 인물이다. 분례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 성노예로 동원된 조선의 평범한 소녀로, 고통을 겪은 뒤 화평은 분례의 나비 문신의 실체를 알면서도 부채 장인 가족으로 살아온 화평네 가족 구성원이 된다. 상처와 삶을 연대해 폭력의 역사적 내면을 치유하려는 인간적인 연대성은, 과거사가 정치적으로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 위안부의 사회적문제와 할머니들의 현재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극단 따뜻한 사람 허석민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극단 따뜻한 사람 허석민

◇바람의 기억과 치유의 방식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의 역사적·폭력적 사건은 분례 이야기부터 고문으로 죽어간 화평 부모의 죽음, 노부로의 역사적 만행, 일본군으로 징용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간 화평, 해방 이후 장터를 떠돌며 분례와 화평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부채 장인으로 살아가다 바람꾼 화평이 요시오(김건 분)를 본 뒤 사라지면서 이산(離散)이 되어버린 분례와 화평의 이야기, 그리고 화평의 복수가 플롯의 구조이다. 이러한 역사적 재현을 무대화할 때 오류를 범하기 쉬운 점은, 작가적 허구와 역사적 실체를 작가의 지시문 그대로 재현화하는 구조이다.

연출은 이러한 구조를 무대로 형상화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데, 재현된 서사로 아픔과 역사적 관계들이 실체적으로 드러나 보이려는 표현 방식은 작가적 서사이면서도 실체적 역사의 사실성이 무대에서 환기될 뿐, 충격적으로 감각되어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분례에게 부채는 기억을 재생화할 수 있는 도구이면서도, 바람이 불어 문신으로 각인된 치욕의 역사성을 씻어내고자 하는 기다림이자, 부채의 바람으로 견뎌온 가족과 화평과의 사랑의 연대적 표상이다.

이 작품에서 연출적으로 응집되어야 할 장치들은 분례의 기억에 있다. 이러한 기억을 무대 위로 환기시키며, 연출적 표현 방식으로 현재에도 씻어낼 수 없는 역사성을 어떻게 감각화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희곡의 구도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화평 가족과 부채 장인의 죽음, 분례의 치욕적인 과거, 화평의 복수 등이 과연 재현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아무리 확장된 복수의 서사와 아픔, 폭력이 무대 위에 쏟아진다 해도, 그 잔상의 기억이 관객에게 통증처럼 베어질 수 있을까.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현재의 관객들은 올드한 연극적 아날로그 방식에 쉽게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희곡을 기반으로 무대를 정직하게 섬기려는 태도, 연극적 정신은 분명 공감할 만하다. 무대 공간을 적절히 활용한 연출적 구현과 배우들의 성실한 연기 또한 작품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적인 무대화의 설득력은 여전히 취약하게 보인다. 이러한 재현적 구도는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작용한다. 연출은 우연히 만난 분례와 은실의 관계, 즉 현재의 시간에 더욱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극단 따뜻한 사람 허석민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 극단 따뜻한 사람 허석민

연극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가적 설정은 '은실'(박지혜 분)이라는 인물이다. 은실의 설정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지만, 분례의 과거와 현재가 동일시될 정도로 분신화된 인물이기도 하다. 두 인물이 낯선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의 과거를 회상하고, 그 회상의 시간과 대화 속에 모든 역사성이 응축되어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의 대화에 내재한 시간은 아프고, 동시에 충분한 서사적 설득력도 지닌다. 그러나 연출적으로 이 두 인물의 관계와 회상을 더욱 부각시키고, 재현되는 장면들을 다른 언어적 도구들로 치환하여 무대의 장면적 구조를 제거한 채 이미지, 공간, 소리, 오브제와 같은 효과적인 장치들로 분례와 은실의 기억을 교차시키는 연출적 구현을 시도했더라면, 이 작품은 보다 실험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설정한 인물들도 플롯도 작위적이고 연출은 그 작위성을 재현을 통해 설명하려 한다. 이로 인해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는 효과적으로 '바람'을 일으키기보다는, 은유적 메타포 안에만 함몰되어 있는 인상을 남긴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설정해놓은 장면화된 역사적 장식들을 어떻게 '현재화'할 수 있는가이다. 이 작품을 통해 인상 깊게 읽혔던 것은 우명희 배우의 연기와 버스 정류장 장면, 그리고 연극을 정직하고 우직하게 무대로 표현하고자 한 연출의 자세였다. 그러나 때로는 희곡을 신봉하더라도, 희곡의 서사를 더욱 감각적으로 현재화할 수 있는 책임은 연출가에게 있다. 허석민 연출이 앞으로 그 지점에 더 다가가길 바란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