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베이징의 천안문 망루에 중국의 시진핑과 러시아의 푸틴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이 나란히 선 장면은 반미 반서방 '3자 연대'를 보란 듯이 과시했다. 이 세 나라의 정상이 함께 천안문에 오른 것은 1959년 신중국 10주년 행사에서 마오쩌둥과 흐루쇼프 그리고 김일성 이후 66년 만이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비친 모습을 통해 '신냉전'이 거론된다.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하던 전날, 러시아는 친미 정권의 조지아를 전격 침공했다. 신냉전 이슈는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 무드를 일거에 압도해 버렸다. 이후 2022년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여 3년이 넘게 전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움직임 때문이었다. 지난 1일 중국 텐진의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 참석한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위기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키이우(우크라이나 수도)에서 서방이 주도한 쿠데타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억지를 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에 휴전을 압박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나토 반대와 함께 우크라이나 영토를 요구하고 있다.
시진핑이 전개한 열병식 퍼포먼스는 가히 화려했다. 신형 핵미사일과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스텔스 전투기, 초대형 무인 잠수정 등 육해공 최첨단 무기가 총동원되었다. 사실상 미국을 향한 무력시위다. 시 주석은 전승절 연설에서 "세계는 지금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변했다.
김정은이 이룬 성과는 이런 시진핑과 푸틴을 '뒷배'로 두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그 와중 12살짜리 딸 김주애가 포커스를 받았다. 9살에 등장하여 12살에 첫 국외 후계자 수업에 나섰으며, 김씨 일가 4대 세습 후계자임을 알렸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모습이다. 일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6월에는 김주애의 명품 시계가 화제였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강원도 동해안의 원산 갈마해양관광지구 준공식에 참석한 사진을 실었다. 김정은 옆에 서 있는 김주애의 손목에 찬 시계가 3000만원을 호가하는 스위스 명품 시계라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굶주리는데 12살짜리 아이가 그런 명품 시계를 차고 있는 모습에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북한 유일의 매체라 할 수 있는 노동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내놓고 있다. 2년 전 김주애가 김정은과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참관한다며 나왔을 때도 수백만원짜리 외국산 명품 외투를 걸쳤다.
우리에게는 북한이 직접적인 위협이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였다. 이 핵무기는 결국 이런 그로테스크한 김정은 일가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2011년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에 저항해 시민혁명이 일어났던 것과 같은 상황이 만약 북한에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당시 시민혁명 세력은 카다피 정부군의 공격에 거의 몰살 직전까지 갔지만 유엔과 서방의 개입으로 반격을 할 수 있었고, 카다피 정권은 결국 무너졌다.
만약 카다피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서방이 개입할 수 있었을까? 2011년 10월 카다피가 죽고 12월 김정일이 죽었다. 김정일은 카다피의 몰락을 보며 김정은에게 무슨 말을 해줬을까? 김정일이 죽은 후 최고 권력자가 된 김정은은 3, 4, 5, 6차 핵실험을 단숨에 진행시켰고, 2017년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3자 연대의 과시를 보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중국과 러시아, 북한은 모두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미국 및 서방과 대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가장 직접적인 상대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비호한다면 우리는 불리하다.
한반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가.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의 인권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불과 얼마 전 문재인 정권은 북한과 세 번이나 만났지만 무엇이 달라졌나? 결국 북한에 '면죄부'를 준 것밖에 없다. 김정은은 '북한 비핵화'라는 말을 없애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공식화하는 데 성공했다.
한반도에 핵무기가 있는 곳은 북한밖에 없는데 왜 한반도 비핵화인가?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이 세 번 만나며 남긴 결과이다. 북한 인권은 고사하고,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6명의 우리 국민에 대해서조차 일언반구 없었다. 김정은을 만나려 몸이 달아 있다는 '셰셰 정권'이 '문재인 시즌 2'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